경찰 등과 합동단속을 벌이는 원병오 명예교수(오른쪽) - 이종승기자
“짹짹! 짹짹!”
“박사님, 이리 좀 와보세요. 이 새는 뭐죠?”
17일 낮 서울 종로구 창신동 애완동물 거리의 3평 남짓한 새(鳥) 상점. ‘새 할아버지’로 통하는 조류학자인 원병오(元炳旿·73) 경희대 명예교수가 비슷비슷한 수백 마리의 새들에 둘러싸여 우왕좌왕하는 밀렵 단속반원들에게 쉴 새 없이 새 이름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상점 주인들은 “이것들은 아니라니까요. 외국에서 온 새인데 괜찮은 거예요”라며 둘러댔다.
그러나 ‘새 할아버지’가 “멋쟁이새, 검은머리촉새, 모두 불법이에요”라고 결론을 내리면 상점 주인들은 꼼짝없이 입을 닫아버렸다.
그는 이날 경찰, 환경부 밀렵감시단, 일본 조류학자 등 10여명으로 구성된 합동단속반과 함께 야생조류를 판매하는 상점들에 대한 단속에 나섰다.
수년 전 외국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을 때 “한국에서는 시내 중심가에서 야생동물이 거래된다”는 얘기를 듣고 수치심을 느꼈다는 원 교수. 그는 이후 강의가 없는 휴일이면 틈틈이 시간을 내 애완동물 상점을 찾아다니며 야생동물을 거래하지 말도록 주인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간곡한 요청이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날 경찰의 지원을 받아 단속반과 함께 직접 현장에 출동한 것.
수십년 동안 이 지역의 새 상점들을 드나들어 상점 주인들과도 잘 아는 사이인 원 교수는 “박사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라고 울먹이는 주인들에게 “야생동물 거래는 절대 안 됩니다”라고 단호하게 대응했다. 원 교수는 “상점 주인들이 서로 합의해 야생동물 거래를 중단하기를 바랄 뿐”이라며 경찰에 선처를 부탁하기도 했다.
이날 원 교수와 함께 단속 현장을 지켜본 일본 야조회(野鳥會) 밀렵단속 총책임자인 엔도 기미오(遠藤工男·69)는 “얼마 전 일본에서 최고 100만엔(약 1000만원)까지 거래되는 야생조류인 동박새가 한국에서 밀수입된다는 얘기를 듣고 원 교수를 찾아 왔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동박새를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시내 중심가에서 야생동물이 공공연히 거래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이날 단속반은 종달새 멋쟁이새 멧새 등 야생조류 30여마리를 찾아내 경찰에 넘겼다. 경찰은 적절한 절차를 거쳐 이 새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