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릿 로저스 교수
《인터넷의 등장으로 언론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권력과 언론간의 대립과 긴장관계가 여전하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의 바람직한 역할은 무엇인지, 그리고 신문과 방송으로 상징되는 올드 미디어와 인터넷이 이끄는 뉴 미디어는 과연 상생(相生)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세계언론학회(ICA) 학술회의 참석차 방한한 언론학계의 세계적 석학인 미국 뉴멕시코대 에버릿 로저스(Everett M Rogers) 석좌 교수와 펜실베이니아대 조지프 카펠라(Joseph N Cappella) 교수가 16일 학술회의가 열리고 있는 서울 중구 힐튼호텔에서 김영석(金永錫)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장과 미디어의 미래와 디지털 시대의 정보 격차, 정부와 언론의 관계 등에 대해 좌담을 나눴다.》
▽김영석〓이번 세계언론학회 학술회의의 주제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화해’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를 맞아 올드 미디어와 뉴 미디어는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신문으로 상징되는 올드 미디어가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변형, 적응해 나갈 것으로 보는가.
▽로저스〓디지털 시대 이전에도 뉴 미디어는 언제나 올드 미디어에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TV가 영화 산업을 고사시켰다. 그러자 할리우드의 프로덕션들은 TV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활로를 찾았다. 올드 미디어와 뉴 미디어는 이처럼 서로 위협하면서도 동시에 상보적인 관계다. 신문의 경우도 비슷하다. 신문을 읽은 독자들이 더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할 경우 인터넷에 눈을 돌릴 것이고, 신문사는 자사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독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인터넷 매체 정보여과 취약▼
▽카펠라〓옳은 지적이지만 문제는 뉴 미디어가 오랜 전통의 올드 미디어가 갖고 있는 아이디어와 콘텐츠마저 잠식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 간의 컨버전스(convergence·융합)는 결국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배합비율 문제로 귀결된다.
▽김〓인터넷이 올드 미디어의 자리를 어떻게 파고들 것으로 보나.
조지프 카펠라 교수
▽로저스〓많은 기자들이 전화 인터뷰 대신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다. 정보의 배달 방법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미디어의 정보전달 방식에서도 발견된다. 즉, 일원적인 정보 흐름이 사이버 공간상의 다원적인 흐름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뉴 미디어의 정보는 100% 품질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뉴 미디어의 정보는 단일 소스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루트를 갖고 있어 제대로 측정할 수 있는 장치가 부족하다.
▽카펠라〓얼마전 위스콘신대에 있는 내 동료는 논문을 통해 뉴 미디어와 올드 미디어의 차이는 콘텐츠의 창의력과 공신력에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뉴 미디어의 맹점은 아직 정보의 게이트 키핑을 위한 장치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올드 미디어와 달리 정보처리 과정의 ‘미들맨’(middleman·중간통제자)이 없다. 이는 결국 뉴 미디어가 쏟아내는 엄청난 양의 정보가 제대로 여과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그렇다면 뉴 미디어가 올드 미디어의 전통적인 ‘언론’(또는 보도) 기능을 어느 수준까지 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보나.
▽카펠라〓‘러시 림보(Rush Limbaugh)’라는 미국의 라디오 정치 토크쇼의 예를 들어보자. 워낙 인기가 있어 나중에는 라디오 스튜디오를 그대로 TV로 옮겨 방송된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생방송 도중 인터넷을 통해 즉석에서 여론을 수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을 통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만의 의견이 마치 여론의 전부인 것처럼 비칠 가능성이 크다. 또 아직까지는 단순히 인터넷에 게재됐다고 해서 이를 여론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시기상조인 듯하다.
▽로저스〓다른 부분도 있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유전자 조작 식품 문제가 큰 이슈다. 주로 비정부기구(NGO)들이 유전자 조작 식품 반대를 주제로 문제를 삼았는데 이들은 인터넷으로 스스로를 연결,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NGO의 세력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존 미디어 질서에서는 큰 목소리가 작은 목소리를 죽이기도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작은 목소리가 증폭되는 효과도 있다.
▽김〓화해라는 주제는 디지털 시대 정보 격차, 즉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가.
김영석 교수
▽로저스〓신문은 7, 8년 정도의 교육을 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매체다. 즉 중학교 1, 2학년 수준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기사가 쓰여진다. 그러나 미국의 인터넷 웹사이트는 일반적으로 13년 정도의 교육을 받은 사람에게 적당한 수준이다. 즉, 대학 재학생 이상에게 맞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수준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어 이용 정보의 격차도 줄어들고 있다.
▼고급정보보다 실용정보 접속▼
▽카펠라〓한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네트워크 사회’(Wired Society)다. 말 그대로 ‘인터넷 공화국’이다. 디지털 디바이드의 핵심은 우선 네티즌이 실제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수 있다. 내용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미국도 인터넷 이용 인구와 비율은 세계적 수준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네티즌이 인터넷 쇼핑과 엔터테인먼트 관련 정보 찾기에 열중하고 고급 정보는 상대적으로 등한시한다. 물론 이것이 디지털 시대의 또 다른 ‘지식 격차’로 나타날 수 있지만 알고 보면 인터넷은 자신이 접속한 상태에서 편안하게 사용하면 그만인, 그런 매체일 수 있다.
▽김〓화제를 돌려보겠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취임 직후 햇볕정책을 발표한 뒤, 한국 여론과 언론은 사실상 양분됐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주요 언론은 정부의 무조건적인 대북지원 방법에 문제 제기를 했고, 일부 신문과 지상파 방송사들은 평화 정착을 위한 지원을 지지했다. 이러한 갈등 양상은 지난해 비판적 언론사에 대한 사상 초유의 언론사 세무조사로 이어졌고 비판적 언론사의 대주주들은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갈등 양상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로저스〓언론사 대주주들이 구속된 사실은 알고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매우 주목할 만한 연구 대상이라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다시 토론할 기회를 갖자.
▽카펠라〓좌담직전 홍석현 세계신문협회(WAN) 회장을 만나 일부 이야기를 들었다. 정치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귀중한 사례연구 대상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미국에 돌아가서 연구하겠다.
▽김〓원론적인 질문을 하겠다. 오늘날 정부 또는 권력과 언론의 관계는 어떻게 정립해야 하나.
▽카펠라〓어려운 질문이다. 미국의 많은 사람들은 언론에 대하여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우후죽순 격으로 생긴 뉴 미디어 탓일 수도 있지만 미디어 자체의 신뢰도도 점차 떨어지고 있다. 당분간 이런 경향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여전히 언론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는 여전히 중요한 민주주의의 명제이고, 정부는 언론에 가이드라인과 같은 ‘장벽’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정부는 언론을 간섭해서는 안 된다.
▽로저스〓카펠라 교수의 의견에 동의한다. 지난해 9·11테러 당시 정부와 언론의 협력은 최고조에 달했다. 테러와 관련된 수많은 충격적인 영상을 방송했고, 백악관을 수시로 연결해 정부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미디어의 자유는 평상시에는 다르게 규정돼야 한다. 언론은 등장 때부터 자유를 추구했고 영원히 자유로워야 한다.
▼언론 대주주 구속 주목 대상▼
▽김〓정부와 언론의 대립 관계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세무조사와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거꾸로 정부와 언론이 밀월관계가 될 경우 편애를 유발할 수도 있다.
▽카펠라〓일부에서는 정부와 언론의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독립민간위원회인 ‘프레스위원회’와 같은 제3의 기관을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소수 의견이다. 정부와 언론의 바람직한 관계는 여전히 연구 대상이다.
▽로저스〓내 친구 중 한 명이 NBC방송 백악관 출입기자였다. 그는 개인적으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좋아하게 됐고 친해졌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회사에 출입처를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어느 순간부터 기사에 ‘편견’이 개입됐다는 이유였고 그는 스스로 이 사실을 시인했다.
▽김〓미디어를 통한 남북한의 문화적 사회적 통합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나.
▽로저스〓개인적으로는 6·25전쟁 당시 B29 폭격기에 탑승해 폭탄을 투하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한국은 내게 특별하고 친숙한 나라다. 남북 문제는 이미 50년 이상 된 얘기다. 결과적으로 통합을 이끌어내는 일이 문제인데 그것이 바로 미디어의 역할이다. 하지만 왜곡 없이 정확하게 사건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통합이 어렵다고 본다. 오랜 세월 깊어진 감정의 골이 하루아침에 메워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카펠라〓남북한 관계만큼 ‘정보 전달’이라는 언론 본연의 기능이 중요한 문제도 없을 것이다. 되도록 의견을 배제하고 엄밀한 사실 전달에 충실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는 올드 미디어와 뉴 미디어의 차이는 있을 수 없다.
정리〓나성엽기자 cpu@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참석자 약력▼
△미 아이오와주립대 박사
△전 미시간주립대, 스탠퍼드대, 남캘리포니아대 교수
△주요 논저:‘Diffusion of Innovations’ 외 다수
△미 미시간주립대 박사
△2001년 세계언론학회(ICA) 회장
△주요 논저:‘Spiral of Cynicism’ 외 다수
△미 스탠퍼드대 박사
△전 연세대 대외협력처장
△주요 논저:‘디지털 미디어와 사회’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