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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1012' 마케팅]어른흉내 내면서도 '자신들만의 것' 강조

입력 | 2002-07-18 16:06:00

서울의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서 한 초등학생이 색상과 디자인을 따져가며 티셔츠를 고르고 있다 [사진=전영한기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게스 키즈’ 매장에서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하나.

어린 손님들이 혼자서 매장을 둘러보며 입을 옷을 고른다. 엄마들은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엄마들이 하는 일은 자식들이 옷을 고르고 나면 옷값을 지불하는 게 전부. 숍매니저 김지연씨는 “요즘은 초등학교 고학년생쯤 되면 취향에 맞는 옷을 직접 고르고 부모는 아이들의 선택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리틴이 새로운 소비 주체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3년 전만 해도 패션 업계는 만 10∼12세, 초등학교 고학년생인 프리틴 세대를 별도로 구분짓지 않았다. ‘아동복 가운데 큰 사이즈’ 또는 ‘청소년 의류 중 작은 사이즈’가 프리틴이 선택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프리틴의 구매력과 구매결정력이 커지면서 틈새시장이던 프리틴 마켓이 점차 부각되고 있다. 프리틴을 위한 제품 개발에 한창인 패션 화장품 출판업계에서 이 같은 추세는 두드러진다.

이랜드가 2000년 만 10∼12세 정도의 여자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정해 선보인 ‘더데이 걸’이 대표적인 프리틴 브랜드. 지난해 매출이 전년에 비해 20% 늘어났고 올해 상반기에는 매출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기획담당 김지수 대리는 “성인을 흉내내고 싶어하는 여자 어린이들의 성향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디자인은 성인 캐주얼이되 소재는 세탁이 쉬운 면 등을 채택하는 게 ‘더데이 걸’의 전략.

기존 아동복 브랜드 중 ‘지오다노 주니어’ ‘폴로 보이즈’ ‘휠라 키즈’ 등도 전체 연령대 중 프리틴 대상 제품의 종과 생산량을 점차 늘리고 있다. 2000년 2월 롯데백화점 본점에 입점한 ‘지오다노 주니어’의 경우 첫해 33억원, 2001년 95억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올해는 상반기 매출액만 60억원에 이른다. 매출증대의 주력군은 프리틴이었다.

프리틴의 구매력은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도 나타난다. 엔프라니가 1999년 내놓은 청소년용 화장품 ‘에퓨’가 대표적인 사례. 이 회사 박재희 과장은 “당초 중고등학생을 겨냥해 만들었는데 초등학생들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프리틴들이 사용하는 제품도 로션 스킨 등 기초화장품부터 에센스 파우더 립글로스 등으로 다양해지는 추세다.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 김유 대리는 프리틴의 소비성향에 관해 “어른 흉내를 내고 싶어하면서 동시에 또래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자신들만의 ‘코드’를 원한다”고 해석했다. 문구점에서 파는 조잡한 색조 화장품이라도 사서 쓰려는 데선 어른을 모방하는 심리를 엿볼 수 있다. 반면 아동용 화장품은 만화 캐릭터가 유치해 보여서, 어른용 화장품은 향이 강하다는 이유로 싫어하는 데서는 ‘우리들만의 것이 필요하다’는 욕구가 강하게 드러난다.

출판업계는 프리틴 세대의 이 같은 특징에 착안해 성인용 콘텐츠(내용)를 어린이용 소프트웨어(만화)에 접목시킨 책들을 내놓고 있다. 만화 수호지, 만화 그리스로마 신화 등이 대표 사례. 삼성출판사는 올 여름방학을 겨냥해 고전 ‘일리아드 오디세이’를 만화로 풀어쓴 작품을 출간할 예정이다. 삼성출판사 김은경 편집국장은 “몇 년 전만 해도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한 책은 창작동화가 주류였지만 이제 이 또래에게 동화는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2∼3년 전부터 프리틴마켓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리미티드 투(Limited Too)’라는 브랜드가 성공 사례로 꼽힌다. 10대 초반을 대상으로 한 이 브랜드는 외출복 속옷 잠옷 구두 액세서리 등을 두루 갖춘 토털 브랜드로 매년 세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금동근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