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효순 심미선양(실루엣)이 작년 2월 선생님들과 함께 찍은 초등학교 졸업기념사진
《기자는 15년 전 경기 북부의 한 보병부대에서 군복무를 했다.
이 지역에서 군복무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법원읍과 광적면이라는 지명을 알고 있다.
하계 및 동계군사훈련, 대대 ATT, 연대 RCT 등을 받게 되면 반드시 한 번 정도는 이곳을 지나간다. 경기 문산에서 파주를 거쳐 서울에 이르는 1번 국도와 연천에서 의정부를 거쳐 서울에 이르는 3번 국도는 북한군이 서울로 최단시간에 접근할 수 있는 도로다.
한국군과 미군은 양 도로를 두 축으로 삼고 군사분계선의 철책부터 한강까지 5단계의 방어선을 구축해 각각의 방어선에서 어떻게 작전을 펼칠 것인가를 평소 훈련한다. 이런 훈련과정에서 두 도로 사이를 움직이는 이동로로 빈번히 사용되는 곳이 법원읍과 광적면을 잇는 56번 지방도다. 바로 지난달 13일 광적면 조양중학교 2학년 신효순양(14)과 심미선양(14)이 미군 장갑 궤도차량에 치여 처참하게 목숨을 잃은 곳이다.》
지난달 13일은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선거일. 이날 오전 10시반경 평소 같으면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을 시간, 광적면 효촌2리에 사는 두 학생은 마을을 나서 56번 지방도를 따라 갓길로 걷고 있었다. 도로를 따라 300m 정도 가면 길가에 초가집이라는 이름의 식당이 있는데 이 곳에 두 학생의 친구인 김다희양(14)이 살고 있었다. 이날은 다희양의 생일. 두 학생은 다희양 집에서 만나 의정부로 놀러가기로 약속했었다. 마침 그 다음날은 효순양의 생일이기도 해서 모처럼 시내에 나가 함께 영화도 보고 노래방도 갈 참이었다. 이들이 함께 나온 효촌초등학교는 효촌2리에서 조금 떨어진 자그마한 시골학교로 졸업 당시 같은 학년 학생이 모두 10명에 불과했다. 그중 여학생은 6명이었는데 이날은 한 친구를 빼고 5명이 모두 의정부에서 모이기로 한 날이다.
경기 파주시 법원읍과 양주군 광적면을 잇는 56번 지방도상의 사고지점
사고가 난 갓길은 아주 위험한 길이다. 편도 1차로에 불과한 지방도의 갓길치고 위험하지 않은 곳이 있을까마는 그 갓길은 특히 더 위험했다. 법원읍쪽에서 넘어오는 차량은 마을 앞까지 내리막길을 한참 달려야 한다. 마을 앞에서는 갑자기 도로 사정이 바뀌어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오른쪽으로 산을 끼고 상당히 휘어져 올라간다. 차량이 내리막길을 내려오던 가속을 그대로 유지한 채 오르막길을 오른다면 운전자는 커브길에서 반대 차로로 내려오는 차와 갑자기 마주칠 수 있는 곳이다. 사고가 난 지점은 바로 그 오르막 커브의 갓길이다. 게다가 산을 깎은 바로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어 더 피할 여지도 없는 곳이다.
두 학생은 평소 이 갓길을 자주 이용하는 편은 아니었다. 당시 다니던 조양중학교로는 마을앞 정류장에서 일반 버스를 타고 통학했다. 초등학생 때도 등교는 일반 버스나 농사짓는 부모님이 태워주는 차로, 하교는 방과 후 다니던 학원의 버스로 주로 했다. 그러나 친구 다희의 집은 버스나 부모님 차를 타고 가기에는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두 여학생을 친 차량은 정확하게는 도하(渡河)작전용 부교(浮橋)를 들어올리는 특수 공병 궤도차량으로 AVLB(Armored Vehicle Launched Bridge)라 불린다. 사고 발생 당시 양주군 무건리 훈련장에서 전술평가훈련을 받던 미 제2사단 44공병대대 소속 7대의 차량이 56번 지방도를 따라 사고지점에서 가까운 덕도 삼거리 부근 집결지로 이동하고 있었다. 차량행렬은 콘보이(convoy·호위)차량 1대, 장갑 바퀴차량 APC 1대에 뒤이은 사고차량과 뒤따르는 일반 공병 궤도차량 3대, 콘보이 차량 1대로 이뤄졌다.
한국군과 미군의 최초 작전은 방어다. 경기 북부지역에서 방어는 미국 본토나 함대로부터의 지원을 받기까지 서울을 사수하는 것이다. 그 후에야 반격에 나서는데 반격은 임진강 가상 도하작전으로부터 시작한다. 적이 다리를 파괴하고 철수한 임진강에 부교를 띄워 전차나 보병이 움직일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는 것이 공병대의 주요 임무다.
당시 사고차량 진행방향 맞은 편으로는 미군 브래들리 경전차 5대가 정반대로 덕도 삼거리 부근 집결지에서 무건리 훈련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미군은 공병이 부교를 설치한 직후 전차부대가 공격에 나서는 반격 작전과정을 훈련하고 있었다.
양쪽에서 마주 오고 있던 차량행렬은 마침 두 여학생이 갓길을 따라 걷고 있던 오르막 커브길 근처에서 마주쳤다. 사고 경위에 대해서는 많은 얘기들이 오가고 있지만 피해자 가족들이 이해하는 사고 경위는 대개 이렇다.
효순양의 아버지 신현수씨(49)는 “실제 사고차량에 탑승해 본 결과 운전병과 조수석에 앉은 선임탑승자 사이에는 부교 설비가 가로막고 있어 운전병이 갓길을 지나는 사람을 직접 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일방적으로 운전병에게 책임을 돌릴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신씨는 그러나 콘보이 차량이 사고차량에 앞서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왜 좁은 공간에서의 교행(交行) 시도를 그대로 방치했는지, 사고차량의 선탑자는 운전병에게 제 때 오른쪽 갓길 상황을 알렸는지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
미군은 ‘운전병과 선탑자간의 통신이 간헐적으로 끊겨 선탑자가 운전병에게 지시를 내릴 수 없었다’는 얘기를 흘리고 있다. 장갑차 탑승자들이 사용하는 헬멧은 CVC(Combat Vehicle Crewman) 헬멧으로 불린다. 이 장비는 외부와의 무선통신과 인터콤이 동시에 가능하다. 운전병이 설혹 외부와 통신을 하고 있더라도 선탑자가 인터콤으로 간섭해 내부 통화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군의 설명은 부족한 점이 많아 한국 검찰이 직접 나서 미군 공병대 훈련수칙을 전반적으로 검토한 후에야 납득할 수 있는 사고 경위가 밝혀질 수 있을 것 같다.
사고가 난 도로의 폭은 3.30m 정도인데 반해 사고 차량의 폭은 3.65m다. 사고 차량이 중앙선을 침범하지 않으려면 갓길을 걷고 있던 학생을 치지 않을 수 없다. 굉음을 울리며 다가오는 궤도 차량을 발견한 학생들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는 알 수 없다. 갓길이 다소 넓어지는 앞쪽으로 달아나거나 갓길옆의 잡초가 무성한 폭 60cm정도의 고랑에 뛰어들어 산쪽에 바짝 붙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고차량이 처음부터 갓길을 차지하지 않고 중앙선을 넘어 진행했다면 긴급 대피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신씨는 “사고차량이 커브길에서 언덕을 넘어오는 전차를 발견하고 교행을 준비하기 위해 급작스럽게 옆으로 틀다 애들을 치었다”고 보고 있다.
기다리던 효순이와 미선이는 오지 않았고 그날의 생일파티는 엉망이 됐다. 초등학교 6년을 같이 다녔고 중학교도 같이 다니고 있어 자매 이상으로 친했던 남은 친구들은 아직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효순양을 위해 준비했던 선물을 태우는 것으로 그들만의 장례식을 치렀다.
이들의 6학년때 담임이었던 효촌초등학교 홍성찬 교사는 “효순이, 미선이가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케이크를 사들고 학교를 찾아왔던 것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며 안타까워했다.
학교를 나서는 기자에게 홍 교사는 이런 말을 던졌다. “가까운 친구집 찾아가는 것이 먼 학교 가는 것보다 더 위험천만한 일이라니….”
두 소녀의 일상속의 그 길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군사작전용으로 주로 쓰이는 도로일 뿐이다. 기자도 군복무 시절 그 갓길을 따라 수없이 행군을 했다. 특히 졸음과 피로에 겨운 행군길에 좁은 도로 위를 탱크가 굉음을 울리며 위협적으로 지나갈 때면 얼마나 아찔했던가. 그 길이 누군가에게는 가까운 친구집을 찾아가는 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15년이 지나 다시 이곳을 찾기 전까지는 좀처럼 해보지 못했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