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배모씨(34·서울 노원구 하계동)는 4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 중고차 매매업체를 찾았다. 배씨가 고른 차는 현대 베르나 2001년형. 직원은 “신차와 다름없다”며 판매가를 800만원이라고 밝혔다.
차값이 비싸다고 느낀 배씨는 ‘꾀’를 냈다. 다음날 그 매매상에 전화를 걸어 거꾸로 물어본 것. 같은 차종을 파는 것처럼 말하고 “얼마에 사겠느냐”고 묻자 직원은 450만원을 제시했다. 배씨가 어제 차를 사러간 사람이라고 밝힌 뒤 “어떻게 350만원이나 차이가 나느냐”고 항의하자 “각종 세금, 정비비, 차 보관비 등 경비가 많이 들어간다”고 얼버무렸다.
일본 후쿠오카(福岡)시에 사는 가네마루 히로코(32·여)도 3월 현지의 중고차 매매상을 찾았다. 모든 차에 정찰가격표가 붙어 있어 가격은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차량점검표에는 차량 상태는 물론 몇 명의 소유자를 거쳤는지, 어떤 사고가 났었는지 등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별다른 가격 흥정 없이 아우디 A6 1999년형을 300만엔(약 3000만원)에 구입했다.
지난해 국내 중고차 시장의 거래량은 181만대를 넘어섰다. 연간 360여만명이 중고차를 사거나 판 것. 이번 휴가철에도 많은 사람들이 중고차를 사기 위해 각종 정보를 알아보지만 ‘속는 것이 아닌지’ 끊임없이 걱정한다.
▽자동차 대리점은 중고차 업자의 ‘상전’〓한국에서는 소비자들이 자신의 중고차를 중고차업자에게 직접 가서 팔지 않는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올바른 가격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
소비자들은 주로 새 차를 구입하면서 자동차 대리점 영업사원에게 중고차 판매를 맡긴다. 연간 거래되는 중고차의 66.9%가 자동차 대리점을 통해 나온다. 중고차 업자들은 차를 구하기 위해 자동차 영업사원들을 깍듯이 모실 수밖에 없다. 중고차 매매상 직원인 박모씨(30·서울 송파구 풍납동)는 “매일 자동차 대리점 2, 3곳을 돌아다니며 중고차 1대에 10만∼20만원을 리베이트로 건네준다”고 말했다.
중고차 업자가 판매가를 정할 때는 이런 리베이트 비용도 고려한다.
일본의 중고차 업자들은 자동차 대리점에 갈 필요가 없다. 대부분 중고차 경매장을 통해 차를 사온다. 경매장에는 중고차 매입전문업체들이 소비자에게서 사온 중고차 수만대가 나온다. 차량 매입시장이 투명하게 형성돼 중고차 업자는 차 상태만을 기준으로 판매가를 결정한다.
미국은 기업형 자동차 딜러들이 새 차를 사려는 고객을 위해 중고차 영업도 함께 한다. 뒷돈 거래는 물론 존재하지 않는다.
▽차량 조작도 적지 않다〓중고차 업자가 사들인 중고차는 부품교체 등 상품화 작업을 거친다. 일부 매매상들의 차량 조작은 이때 이뤄진다.
가장 흔한 것이 주행 미터 조작. 5000∼5만원 정도면 가능하다. 판매가를 100만∼200만원 더 받을 수 있다. 보통 1년 2만㎞ 주행을 기준으로 연식(年式)과 비교해 조작한다. 2000년형 중고차로 주행거리가 9만㎞라면 6만㎞(2000∼2002년 3년간×2만㎞) 이하로 낮춘다. 범퍼 변속기 등에 재생부품을 사용해 정비비용을 수십만원까지 줄이기도 한다. 제동장치 조향장치를 제외한 재생부품 사용은 합법적이다. 보통 중고차의 1% 정도가 재생부품 차량으로 추측된다.
차량 조작이 빈번한 이유는 이를 적발해낼 제3의 차량평가기관이나 전문가가 드물기 때문.
일본은 매입전문점, 중고차 경매장, 중고차 업자 각자가 전문평가사를 고용해 차량을 점검한다. 일본 중고차사업 컨설팅회사 사장인 나가오 사토시는 “공인된 차량평가사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평가하는 데다가 중복으로 평가가 이뤄져 차량 조작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영세한 사업운영〓중고차 매매업자들도 나름대로 할 말이 있다. 차를 정상적으로 팔아서는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것.
폭리를 취하는 일부 악덕업체를 제외하면 매매상들은 보통 “차를 사온 금액의 15%가량을 붙여서 판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금 정비비 매입비 등을 빼고 나면 실제 마진율은 10%를 넘기 어렵다고 한다. 비용이 많이 든다고 판매가를 올리기도 어렵다. 가격경쟁이 치열하고 신차 가격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김소림(金小林) 부장은 “대형 매매상은 판매량이 많아 적은 마진에도 버티지만 중소 매매상은 차량 조작 유혹을 떨쳐버리기 힘들다”며 “100평 이상 부지만 있으면 가능한 중고차 매매사업 등록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시장에 새 바람도 분다〓최근 국내에서도 대형화·투명화를 내세운 중고차 매매상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오토큐브’는 전국 15곳 이상의 중고차 업자를 연계, 대형 중고차 판매망을 구축할 예정이다. 일본처럼 소비자들에게 직접 중고차를 사오는 매입전문가 80여명도 확보했다.
‘자마이카’는 서울 중랑구 상봉터미널 인근에 6000평 규모의 대형 중고차 매장을 열었다. 정찰제와 신용카드 결제도 실시하고 있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이능익(李能益) 실장은 “기존의 중고차업체 가운데도 시장 개선에 관심을 쏟는 곳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정해진 사업 등록기준을 부지 200평 이상으로 높이고 차량 조작에 대한 자체 단속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