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권희·뉴욕특파원
“은퇴 후 편안한 생활을 꿈꿔 왔는데…. 다시 일을 해야죠.”
미국에서 주가폭락으로 당장 충격을 받는 사람들은 퇴직자들이다. 50대 중반까지 돈을 모아 작은 도시에서 여유롭게 살면서 매년 두세 차례의 여행을 즐기려던 퇴직자들은 요즘 걱정이 태산같다. 이들은 뮤추얼펀드 등 간접투자 상품에 돈을 넣어두는 게 보통이고 일부는 브로커를 통해 주식에 투자한다. 매년 5∼6%, 한국 기준으로 보면 그리 높지 않은 투자수익을 기대했던 이들은 이미 ‘공황상태’를 체감한다. “그나마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더 나이든 퇴직자들의 푸념섞인 말은 심각하기만 하다.
“요즘 미국의 주식 투자자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주식을 다 팔아버린 사람과 아직도 팔지 못한 사람이다.”
주가 폭락기에 그 누가 매도 타이밍을 제대로 잡을 수 있을까. ‘며칠만 더 지켜보고…’ 했다가 대기 비용을 치른 투자자도 많다. 떠나지 못해 증시에 묶여 있는 투자자들이 “침대 매트리스 아래가 더 안전했다”며 후회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USA투데이 웹사이트는 ‘투자자의 증시 탈출기’를 공모할 정도다.
주식시장에서 빠져나온 돈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요즘같은 ‘베어마켓(약세장)’에서 인기를 끄는 상품은 미국 재무부 인플레보전증권(TIPS)이다. 미 정부 보증인 이 증권은 5년간 연평균 7.98%, 최근 연 9.29%의 높은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재무부나 브로커를 통해 구입할 수 있고 이곳에 투자하는 뮤추얼펀드를 살 수도 있다.
한국에 본격 도입된 부동산 리츠(REITs)도 인기다. 기업이 아닌 부동산에 투자하는 주식을 사는 셈이다. 쇼핑몰이나 쇼핑센터를 지어 운영하는 리츠는 연수익률 17% 수준이어서 떼돈이 몰린다. 아파트나 사무실에 투자하는 리츠는 덜 좋지만 장기투자시엔 연 10% 수익이 가능하다고 한다. 세를 놓기 위해 주택이나 아파트를 사는 것은 요즘같은 저금리 시대엔 별로 인기가 없다.
‘폭락기의 주식’도 투자대상일 수 있다.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상원 연설이 시작되면서 16일 주가가 회복되고 17일엔 상승세가 나타나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 같다. 그렇지만 ‘바닥을 디뎠다’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홍권희 뉴욕특파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