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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가슴노출로 드라마 홍보?

입력 | 2002-07-18 18:35:00


매일 신문 지면에 공개되는 기자의 e메일 계정에는 하루에도 수백건의 스팸메일이 쏟아져 들어온다. 출근하자마자 밤새 들어온 광고메일을 지우는 것이 하나의 ‘일과’가 됐을 정도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음란사이트를 소개하는 것으로 제목도 유치하기 짝이 없다. 16일 기자는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무심코 광고메일을 지우는데, 제목 중 낯익은 이름이 눈에 띄었다.

‘탤런트 김유미 드라마 촬영 중 가슴 노출!’

‘L양 비디오 전편 입수’, ‘O양 비디오 노컷 공개’ 등 유명 연예인의 이름을 무단도용해 무명 에로배우의 누드를 공개하는 경우가 많아 이 메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드라마 촬영 중 가슴이 노출됐다면 방송담당 기자로서 알아야 할 ‘사건’인데 제작진에서 ‘자진신고’할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침 24일 첫 방송되는 KBS2 사극 ‘태양인 이제마’에 출연하는 김유미가 요즘 촬영에 한창이라고 들었던 참이라 메일을 열어 보았다.

메일을 열자 실제로 김유미가 ‘태양인 이제마’ 촬영 도중 가슴이 공개된 사진 5장이 첨부돼 있었다. 제작사인 팬 엔터테인먼트가 보낸 이 메일은 “김유미가 이제마(최수종)의 숙적 장봉수(윤용현)에게 겁탈당할뻔 하다가 이제마의 도움으로 구출되는 장면”이라며 “‘김유미는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한 장면도 찍을 수 있다’고 말했다”는 설명까지 붙어 있었다.

사진은 김유미가 한복 저고리가 풀어헤쳐진 채 폭포수 아래서 윤용현에게 거칠게 저항하는 모습이었다. 김유미는 치마를 가슴 아래로 내려 입었기 때문에 벗겨진 저고리 사이로 유두가 드러날 정도였다.

이 사진은 결국 모 스포츠신문에 실렸고 뒤늦게 이를 본 김유미는 출연거부도 불사하겠다며 제작사 측에 강하게 항의했다. 팬 엔터테인먼트 측은 “드라마를 홍보하겠다는 욕심에 김유미씨의 사전 허락 없이 메일을 보냈다”고 해명했고 김유미 측에도 정중히 사과해 사건은 일단락됐다.

성인물 동영상을 찾기 위해 굳이 인터넷을 헤매고 다니지 않아도 앉은 자리에서 e메일을 통해 수백건의 ‘은밀한 정보’를 (원하던 원하지 않던)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시청자들이 작품성과 관계없이 김유미의 노출장면을 보기 위해 TV를 틀 것이라고 착각한 제작사의 수준 이하의 발상을 보며 기자 이전에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무시당한 기분을 떨치기 어려웠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