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 공양이 있는 날은 절 집이 온통 잔칫날 같다.
산중 공양은 안거(安居) 수행에 들어간 스님들의 공부 뒷바라지를 위해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고 산중의 모든 스님들을 공양에 초청하는 일을 말한다. 그러므로 산중 공양에는 큰절의 스님과 암자의 대중들은 물론이고 말석의 행자(行者)부터 상석의 노스님까지, 전 대중이 차별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해인사에서는 산중 공양이 있는 날 500여명의 대중들이 운집해 특식(特食)을 맛본다. 특식이라고 해서 고깃국이 올라오고 생선이 놓여지는 게 아니다. 정성과 솜씨로 빚은 가지가지의 산채 음식이 스님들의 입맛을 돋운다. 음식을 먹다보면, 한가지 재료로 열가지 음식을 만들어내는 사찰 음식의 조화에 거듭 놀란다.
아무래도 그 하이라이트는 무엇보다 육식을 못하는 스님들의 형편을 감안해 만든 ‘대체음식’이다.
아니, 이게 웬 탕수육일까? 출가전 중국 요리집에서 맛보던 ‘탕수육’이 눈에 보여 슬그머니 입안에 넣어보면 버섯으로 만든 ‘탕수채’다. 저쪽의 불갈비 같은 음식이 있어서 먹어보면 그 재료는 두부다. 요즘은 콩으로 고기 맛을 내는 음식이 개발되어 절 집에 처음 온 이는 진짜 쇠고기로 착각할 정도다. 이처럼 산사 음식도 시대에 따라 맛과 모양이 바뀌어 가고 있는 셈이다.
최근 산중 공양은 가까운 암자에서 준비했는데 대표적인 여름 음식인 열무냉면이다. 잘 익은 열무 국물에 시원한 얼음을 갈아넣은 냉면은 산중의 무더위를 식혀준다. 대부분의 스님들은 한 그릇 정도는 게 눈 감추듯 후딱 비운다. 스님들이 냉면이나 국수 같은 밀가루 음식을 유별나게 좋아한다는 것은 익히 소문난 사실이다. 그래서 절에서는 국수를 승소면(僧笑麵)이라고 부른다. 국수만 보면 기분이 좋아서 스님들이 빙그레 웃음을 짓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아직까지 국수 한그릇만 있으면 큰스님도, 작은 스님도 음식 투정이 사라질만큼 인기 있는 음식이다.
내 입맛에는 비구 스님들이 만든 음식보다 비구니 스님들이 만든 음식이 더 맛나는 것 같다. 비구니 스님이 머무는 암자에서는 산중 공양 음식으로 만두와 칼국수, 버섯 전골 등이 주 메뉴로 나오는데 종갓집 상처럼 정갈하고 단촐하다. 반대로 비구 스님이 차려내는 음식은 거칠지만 투박한 시골집의 맛이다. 지난 해 이맘때 어느 암자에서 산중 공양으로 만두를 올렸는데 만두 속에 쇠고기를 갈아 넣어 산중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암자의 주지스님이 출타를 하면서 만두 빚는 일을 어린 제자에게 맡겼는데, 순진한 제자는 더 맛있게 한다는 욕심으로 고기를 몰래 넣었던 것이다. 이 일이 있은 뒤 그 암자의 주지 스님은 한철 내내 참회를 했다.
다음 산중 공양은 성철 스님이 머물던 백련암 차례라고 한다. 그 날이 또 기다려진다. 특별한 음식을 먹고 싶은 식탐(食貪) 때문이 아니라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음식을 나눠 먹는 절집의 인정이 더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현진스님 해인사 포교국장 budda122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