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의 1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제목은 ‘꿈은 이루어집니다’ 라는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었지만 연설의 초점은 ‘과거 청산’에 맞춰져 있었다.
우선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아들 및 측근 비리와 관련해 대통령 보좌진과 사정기관 관계자의 책임론을 정면으로 거론했다. 민주당 소속의원들조차 놀랄 정도로 그 표현도 격했다.
그는 연설 초반부터 “측근들이 대통령의 헌법적 권위를 사적 욕망의 도구로 악용했다” “대통령 보좌진 등은 석고대죄해야 한다” “지연과 학연에 의존한 권력기반이 측근정치를 발호케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한나라당 대표의 연설 같았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 아들 비리에 대해선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다” “차라리 피를 토하고 싶다” “비리행각을 막지 못한 저와 민주당은 어떤 질책도 달게 받겠다”는 등 사죄의 뜻을 담은 언급을 덧붙였다.
이 같은 언급엔 ‘DJ의 그림자’를 가능한 한 빨리 걷어내고자 하는 민주당의 바람이 담겨 있다. 지난해 11월 김 대통령이 당 총재직을 사퇴한 데 이어 올해 5월엔 탈당까지 했는데도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것은 민주당이 현 정권의 실정과 DJ 아들 비리의 사슬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인식인 때문이다.
한 대표가 예보채 차환발행 동의안 처리에 한나라당이 협조한다면 곧바로 공적자금 국정조사에 응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과거 문제를 더 이상 피하기만 할 게 아니라 하루빨리 털어 내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한 대표는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를 강하게 공격하고 나섰다.
한 대표가 국세청을 동원한 대선자금 불법모금사건과 이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은폐 의혹 등에 대해 언급하자 즉각 한나라당 의석에서는 고성이 터져 나와 국회 본회의장은 한동안 소란에 빠졌다.
한나라당 임인배(林仁培) 의원은 “이게 대표연설이야”라고 고함을 질렀고 이규택(李揆澤) 원내총무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짓말하지마! 진흙탕싸움 하자는 거야”라고 흥분했다.
이에 민주당 정균환(鄭均桓) 원내총무는 “이회창 후보는 의원직을 사퇴해야 돼”라며 맞고함을 쳤다. 한 대표도 “어제 한나라당 대표연설에서 이제 대통령과 영부인만 남았다고 했는데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대통령은 대통령이다. 한나라당 여러분이 좋은 말을 하면 우리도 좋은 말만 한다”고 맞받아쳤다.
한 대표가 국회에서 다수당의 책임을 강조하면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가 제안한 대통령후보간 회담을 수락할 것을 거듭 촉구한 것은 향후 정국을 ‘DJ 대 반(反)DJ’ 구도에서 ‘노무현 대 이회창’ 구도로 전환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또한 그가 당초 연설문에는 없었으나 ‘이 후보는 북한 지도자를 만나보기를 권유한다’는 내용을 추가한 것도 은근히 차별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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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기자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