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마늘파동]"가격폭락 불보듯…또 갈아엎어야 하나"

입력 | 2002-07-21 18:46:00


20일 오후 전남 무안군 현경면 수양마을 들녘. 60여 농가 120여명이 마늘농사를 짓고 있는 이 마을에는 농민들의 한숨과 분노의 목소리로 넘쳐났다. 수박과 담배 재배 등으로 한창 바쁠 때이지만 농민들은 일손을 놓은 채 마을회관에 모여 앞날을 걱정하고 있었다.

4000여평의 밭에서 마늘을 재배하는 김사수(金士洙·57)씨는 “정부가 농민을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중국과의 협상 내용을 2년 가까이 숨길 수 있느냐”며 “종자 3t을 제외한 10여t을 저온저장고에 보관하고 있는데 당장 가격이 폭락하고 상인들의 발길도 끊겼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박정봉(朴正鳳·56)씨는 “올해 마늘 산지가격이 1㎏에 1400∼1500원으로 최근 5년 사이에 가장 좋은 가격이어서 모처럼 농촌에 생기가 돌았는데 중국에 전자제품을 팔자고 마늘을 국내에 들여오게 하면 농민들은 뭘 먹고 살아야 하느냐”며 울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 마을에서 4㎞ 떨어진 무안군 해제면 장동마을 농민들도 시름에 잠겨 있었다.

농민들은 “정부가 농심(農心)을 이렇게 저버릴 수 있느냐”며 “과거 수세 폐지나 추곡수매투쟁 때처럼 이제 마늘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을 이장 정병태(鄭炳泰·55)씨는 “생산 원가도 나오지 않아 수확도 하기 전에 마늘밭을 갈아엎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내년부터 양파나 배추 등으로 전환해도 공급 과잉으로 대체 작목 가격이 폭락할 수밖에 없어 밭농사가 연쇄적으로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부터 값싼 중국산 마늘이 물밀듯 들어올 것이란 생각에 시름에 젖은 전남 무안군 무안읍의 마늘 재배 농민들이 9월에 파종할 종자 마늘을 다듬고 있다.

전남 지역 마늘 재배 면적은 1만4028㏊로 전국 재배 면적의 43%를 차지하고 있다. 마늘 재배 농가는 7만6000여가구로 도내 전체 농가 23만3000여가구의 33%나 된다. 올해 마늘 소득 추정액은 2685억원으로 쌀 다음으로 중요한 소득원이다.

농민들은 내년부터 중국산 마늘이 밀려오면 연간 400억원대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무안군 농민회 박흥상(朴興相·57) 회장은 “값싼 중국산이 들어오면 국산 마늘은 설 땅을 잃게 된다”며 “품종 갱신 등으로 마늘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긴급관세 부과기간을 2006년 말까지 연장하지 않으면 전국의 농민단체들과 함께 강력한 대정부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찾아간 경북 의성군 의성읍 농업인회관. 의성 지역 농민들을 대표해 모인 6개 단체 회원 20여명이 마늘대책회의를 열면서 정부에 대한 불만을 토해냈다.

3000평에 마늘을 재배하는 의성마늘대책협의회 김선환(金先桓·43) 의장은 “정부가 농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함께 대책을 고민하기보다 속이고 배신해온 태도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밭 1000평에 50년째 마늘농사를 짓고 있다는 김홍수(金洪洙·67·의성군 금성면 대리)씨는 “중국마늘을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미리 솔직하게 얘기를 해야지 국민을 속이다니 괘씸하기 짝이 없다”고 흥분했다.

의성 지역은 7000여 농가에서 연간 1만5000t가량의 한지마늘(전국 한지마늘의 22%)을 생산하는 전국 최대 한지마늘 산지이다.

마늘이 수확돼 17일 올해 처음 열린 의성마늘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은 1㎏에 3000원선. 아직 가격에는 큰 변동이 없지만 중국산 마늘이 대량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소비가 민감하게 위축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의성마늘시장 상인 강신열(姜信烈·52)씨는 “연간 50t 정도 수집해 냉동창고에 저장하지만 올해는 현재 절반 가량만 수집하고 마늘가격이 어떻게 변할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 농민들은 값싼 중국산 마늘의 수입에 대비해 자체적으로 마늘 가격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의성 지역 농민과 상인 그리고 의성군은 11일 13명으로 ‘마늘 출하 조절단’을 구성, 마늘시장이 열리기 전날인 16일 모여 시장 입구에 ‘㎏당 3000원’을 내걸어 누구나 지키도록 함으로써 가격 하락을 막았다.

무안〓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의성〓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