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여의도 방송가에서 정준호의 별명은 ‘조기 종영’이었다(출연하는 드라마마다 시청률이 낮았다). 하지만 지금 충무로에서 그는 가장 바쁜 배우중 하나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8월8일), ‘가문의 영광’(9월13일), ‘하얀방’(10월 초) 등 그가 주연한 영화 3편이 8월부터 잇따라 개봉한다. 여기에 한 카드 회사 CF인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등 광고계 에서도 그는 상한가다.
신은경과 함께 주연한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는 그가 처음 도전하는 로맨틱 코미디. 여성 감독과 여성작가, 그리고 20대 후반 여자들의 심리가 잘 드러난 ‘좋은 사람…’에 출연한 것에 대해 그는 “여자들만의 잔치에 가서 놀다온 느낌”이라며 “여자들에 대해 좀 알고 싶었다”고 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주인공’은 신은경이고, 정준호는 ‘남자 주인공’이라고 해야 할 만큼 신은경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 하지만 정작 이 영화 홍보를 위해 방송이나 잡지 등에 발로 뛰는 사람은 신은경이 아니라 그다. 오죽하면 영화사 측은 “정준호씨한테는 부탁을 더 하기 미안할 정도”라고 할까.
“신은경씨에 비해 비중도 적은데 뭐하러 그렇게 나서냐”고 짐짓 물었다.
“제가 신인 때, 잘나가지 못할 때 도움준 분들이 많았는데 참 고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는 건 다 똑같지 않겠어요. 저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입장에 있을 때 그러고 싶어요. 인기 좀 얻었다고 괜히 ‘관리’들어가고 하는거, 정말 싫거든요.”
그는 지난해 ‘두사부일체’가 성공한 이후 확실한 스타가 됐다. 밀려드는 시나리오도 40편 가까이 되고 개런티도 ‘남 받는 만큼 시세에 맞게 받는다’. 그의 말을 빌리면, “모든 게 달라졌다”. 하지만 스스로는 ‘달라지기 싫어서’ 옛 친구, 옛 시절 자주가던 곳을 즐겨 찾는다. 새벽에 인력 시장에 나가고 밤에 연극하던 배고픈 시절을 잊을까 두려워 그는 요즘도 대학로 후배들을 찾곤 한다.
그의 주변에는 친구도, 후배도 많다. 그는 “사람이 가장 큰 재산”이라고 했다.
“힘있는 매니저가 없어서, ‘빽’이 없어서, 기회가 없어서, 자신이 잘 안풀린다고 생각하는 후배들이 있어요. 하지만 못나간다고 의기소침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그럴수록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리다보면 반드시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는 ‘가문의 영광’을 찍을 때도 ‘월권이 아닌 한도에서’ 자신이 보기에 재능있는 후배들을 적극 추천했다. 그 자신 역시 ‘사이렌’ 때 영화배우 신현준이, ‘흑수선’때는 영화사 사장이 추천해서 출연하게 됐다.
동안(童顔)이긴 하지만 벌써 서른 세 살이다. 곱상하게 생긴 얼굴과 악의 없는 미소가 매력적이어서 로맨틱 코미디에 잘 어울린다. 하지만 정작 그가 좋아하는 영화나 배우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의 니컬러스 케이지나 ‘데드 맨 워킹’의 숀 펜.
-‘꽃미남’이라는 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얼굴만 ‘꽃미남’이면 뭐하나요, 마음이 ‘꽃미남’이어야죠. 코믹 액션 연기에 자신감이 있긴 하지만, 제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건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연기입니다.”
‘몸이 풀릴 때’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싶어 코미디(가문의 영광), 형사물(하얀방)에 도전한 그는 내년쯤 무협물에 출연할 계획이다.사형수의 이야기를 다룬 시나리오를 비롯해 그는 틈틈이 세 편의 시나리오를 써놓았다. 준비가 되면 직접 감독을 할 생각도 있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혹시 준비해 왔는데 기자가 묻지 않아 서운한(?) 질문이 있느냐고 하자 그는 “결혼은 언제쯤 하나요?”하고 말했다.
-언제 해요?
“(웃음) 가능한 한 빨리. 좋은 사람 만나면 언제든지 할 수 있어요. 2년안에는 반드시 하고 싶은데….”
그는 1년가량 사귄 여자 친구와 몇 달전 헤어졌다고 했다. 그 얘기 끝에 그는 “사랑도 일처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일에는 철저하면서도 사랑에 대해서는 이해해주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면 안되고 사랑도 일처럼 일부러 시간을 내고 노력해야겠다”는 것이 이번 ‘실연’을 통해 얻은 교훈.
그리고 그는 영화 제목으로 말을 맺었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주세요.”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