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이면 융단폭격처럼 밀려오는 할리우드 블록 버스터 영화의 홍수 속에 지난주 개봉한 한국 영화 ‘라이터를 켜라’가 고군분투하고 있다.
‘유쾌한 흥행 코믹 영화’의 계보를 잇는 이 작품에는 ‘돈을 갖고 튀어라’에서 어리버리한 킬러로 나와 웃음을 선사했던 김승우가 또 한 번 ‘어리버리’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고 ‘신라의 달밤’에서 자신은 진지하나 남들이 볼 땐 웃기기 짝이 없는 체육 교사로 나왔던 차승원이 이번에도 혼자 진지한 건달 보스 역을 맡았다.
관객들은 시종일관 웃으며 이 영화를 보지만 영화 속의 허봉구는 전 재산 300원으로 산 라이터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 정도로 필사적이다. 이 영화의 관계자는 모두 극중 허봉구처럼 절실히 이 작품의 성공을 바랐겠지만 그 중 가장 초조했던 사람은 바로 허봉구 역의 김승우다.
그는 조연으로 나왔던 ‘장군의 아들’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짜릿하게 영화계에 데뷔했으나 주연 배우로 나선 이후 ‘고스트 맘마’를 제외하면 흥행과 무관한 배우였다. ‘꽃을 든 남자’, ‘깊은 슬픔’, ‘남자의 향기’, ‘비밀’ 등 여러 작품의 주연을 맡아 최선을 다했지만 흥행의 여신은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주연한 TV 드라마 ‘신데렐라’ ‘추억’ 등과 전부인이었던 이미연과 함께 한 광고가 눈길을 끌면서 그의 인기를 유지시켰다.
잉꼬 배우 커플의 대명사였던 그의 갑작스런 이혼은 대중에게 충격을 주었고, 이혼 뒤 오히려 인기가 오른 이미연과 달리 김승우는 답답한 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1년 동안 마실 술을 1주일에 다 마실 만큼 술독에 빠지기도 했고 언론 기피증도 생겼다. 일부 여성잡지는 동료 여배우와 스캔들 기사로 그를 분노케 했고, 완전히 끊겨버린 광고 제의는 그를 경제적 어려움으로 몰고 가기도 했다.
어딜 가나 ‘돌아온 총각’을 보는 사람들의 눈은 왠지 그를 어색하게 했고 남동생의 결혼식에 혼자 서 있던 모습엔 고독함이 가득했다. 무엇보다 부모님 뵐 낯이 없다는 것이 그를 가장 힘들게 했으며 늘 챙겨주던 누군가가 없어진 현실은 그를 ‘생활 속의 어리버리’로 만들기도 했다.
한국 영화의 흥행 대박 행렬을 지켜보면서 그는 드라마 ‘호텔리어’를 선택했지만 함께 출연했던 배용준의 돌풍에 가리는 듯 했다. 이를 악물고 영화 ‘에스터데이’를 선택했고 1년 동안 죽을 힘을 다해 촬영에 임했지만 결과는 월드컵 열기로 인한 흥행 부진이었다.
하지만 잠시 그를 저버렸던 행운의 여신은 이제 다시 그를 향해 미소를 보내고 있다. ‘라이터를 켜라’의 성공적인 개봉 성적 이후 한 회식 자리에서 이미연은 눈물을 글썽이며 축하해줬고 선배 박중훈도 늘 후배들 앞에서 당당해지라며 뜨겁게 포옹해줬다.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후배 배용준의 모습, 심지어 김승우와 영화를 찍었지만 흥행 참패를 했던 영화 제작자들의 진심어린 축하가 어우러져 결국 그는 굵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한 남자로서, 한 배우로서, 당당하게 홀로서기에 성공하고 있는 김승우에게 이번 영화는 어쩌면 시작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가 결코 자만하거나 나태해지지 않고 계속 질주해주기를 바란다.
김영찬 시나리오작가 nkjak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