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가 22일 발표한 ‘주식시장 중심의 자금순환체계 구축방안’은 증시의 중장기 발전을 위해 수요 기반을 넓히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급변한 자금시장 환경에 맞춰 자금순환체계의 밑그림을 다시 그리겠다는 장기마스터플랜인 셈이다. 이번 대책은 ‘한방’과 같은 것이어서 미국 주가 폭락에 따라 휘청거리는 증시를 곧바로 치유하는 ‘즉효약’ 구실은 못하고 있다.
▽예금·대출에서 주식으로〓대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외환위기 이후 은행예금과 대출에 몰려 있는 시중자금을 주식으로 흐르게 해 증시가 장기 안정적으로 상승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개인금융자산에서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 말 61.8%인 반면 주식은 8.5%에 불과했다. 미국은 주식이 45.8%, 예금이 10.6%이고 영국은 예금이 21.11%, 주식이 23.4%이다.
은행도 고객의 예금을 받아 주식에 투자하기보다는 가계에 대출해주거나 채권을 사는 데 주력했다. 증시에 자금이 들어오지 않자 주식은 헐값에 외국인 손에 넘어가 외국인의 주식보유비중은 시가총액기준 35%나 되고 있다. 주가가 올라도 이익은 외국인 손에 들어가고 외국인이 주식을 내다 팔면 주가가 떨어지는 등 증시가 외국인 손에 좌지우지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책의 주요 내용과 한계〓이번 대책의 주요 내용 가운데 하나는 기업연금제도. 샐러리맨이 노후생활자금 마련을 위해 월급의 일정 부분을 매월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기업연금제도를 서둘러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주가가 1990년대 10년간 상승했던 가장 큰 요인이 바로 401k로 불리는 기업연금 때문이다.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중도 늘리기로 했다. 주식투자를 금지한 연기금 규정을 고치고 연기금 풀(pool)의 주식투자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채권(BW) 외에 선물, 옵션, 스와프 등 파생상품을 이용해 다양한 주식연계채권(ELN)을 개발하고 투자신탁과 자산운용을 통합하며 은행에도 투자신탁업무를 허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번 대책에 대해 미래에셋운용 투자전략센터 이종우 실장은 “현 상황은 대증요법만으로 치유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대책은 장기적인 수요기반을 확충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기업연금제도는 노조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아직 시행 여부가 불투명하다. 주식투자를 늘리기 위해 40개 연기금에서 2조159억원의 자금(연기금 풀)을 만들었지만 주식투자가 가능한 자금은 713억원에 불과하다. 미국계 증권사의 한 리서치 헤드는 “근로자장기증권처럼 주식투자를 하면 세제혜택을 주는 상품이 포함되지 않아 약간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증시는 당분간 약세 지속할 듯〓증시는 단기적으로 이번 대책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우증권 홍성국 투자분석부장은 “현재 주가 급락은 국내 요인이 아닌 해외 요인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정부가 발표한 부양책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대책 중 단기적으로 시장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 이정호 투자전략팀장은 “미국 증시동향에 따라 종합주가가 650선까지 떨어지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UBS워버그증권 진재욱 서울지점장은 “종합주가지수 700선이 지지선 역할을 해줄 것이며 바닥에 가까웠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홍찬선기자 h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