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공적자금 수사 과정에서 적발된 부실기업들은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기 위해 재고품과 원자재를 수출하거나 수입한 것처럼 회계장부를 조작하는 등 갖가지 수법을 동원했다.
이 같은 회계부정과 대출사기는 금융기관 동반 부실→공적 자금 투입→추가 부실 발생→공적 자금 재투입이라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공적자금은 ‘눈먼 돈’〓보성인터내셔널과 세우포리머 등 5개 계열사로 구성된 보성그룹과 동산C&G(옛 동산유지)를 인수한 SKM(선경마그네틱) 등 부실기업은 환차손 누락과 위장 수출입 등으로 기업의 부실을 은폐하고 이익을 부풀렸다.
김호준(金浩準) 전 보성그룹 회장은 97년 11월 420억여원을 끌어들여 나라종금을 인수한 뒤 보성 계열사들이 빌린 돈의 이자도 갚지 못하자 나라종금을 ‘개인금고’처럼 이용했다.
나라종금은 2000년 1월까지 기아자동차 한라그룹 대우그룹 등에 대한 부실여신이 겹치면서 2차례에 걸쳐 2조998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
김 전 회장은 나라종금과 시중은행에서 자금을 수혈받기 위해 외국에서 빌린 450억여원을 갚으면서 외국회사에 투자하는 것처럼 서류를 위조했다.
또 외국에서 221억원을 차입하고도 부실을 은폐하기 위해 이를 페놀 수입대금인 것처럼 재무제표를 위장하고 매출액을 부풀리기 위해 재고품을 수출한 것처럼 서류를 위조했다.
김 전 회장은 이런 식으로 나라종금에서 2995억원을 불법으로 대출받고 시중은행 등을 통해 568억원을 사기로 대출받았다.
나라종금 안상태(安相泰) 전 대표 등은 보성그룹에 대한 여신이 한도를 초과하자 1341억원을 차명이나 우회 대출 방식으로 지원했다.
SKM의 최종욱(崔鍾旭) 전 회장과 김년태(金年泰) 전 대표도 외화 환산 손실 100억원을 누락시키고 재고 자산을 과대 계상하는 방법으로 흑자가 난 것처럼 장부를 꾸며 1258억원을대출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최 전 회장은 법정관리중인 동산C&G를 인수한 뒤 금융권에서 빌린 1042억원을 쏟아붓고동산C&G가 한강구조조정기금에서 대출받을 당시 지급 보증을 섰으나 두 회사 모두 2000년 11월 부도가 났다.
노방현(盧芳鉉) 전 서울차체공업 회장은 회사에서 빼돌린 13억원으로 개인의 양도소득세를 냈으며 박정삼 백송종합건설회장은 공사대금으로 가장하는 고전적인 수법으로 회사돈을 빼돌리기도 했다.
▽수사성과 미흡〓지난해 말부터 검찰이 적발한 이들 10여개 부실기업과 금융기관에 투입된 공적 자금은 전체 156조원의 3.2%인 5조원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된다.
또 검찰이 27명의 부실 기업주와 금융기관 임직원을 구속하고 이들이 빼돌린 재산 가운데 370억원을 환수했지만 60조가 넘는 공적자금이 유실된 책임을 묻기에는 수사 성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공적자금 조성 및 분배 과정에서 부실기업과 금융기관의 로비 등 중요 범죄가 적발되지 않고 ‘피라미’ 수준의 기업주들이 처벌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