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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W]이시이 "노모는 선구자"

입력 | 2002-07-22 20:13:00


이시이 가즈히사(LA 다저스·선발투수)가 동료들과 재미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의 일본인 동료 노모 히데오는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보낸다.

노모는 웨이트룸에서 그의 독특한 우물쭈물하는 투구폼으로 섀도우 모션 연습을 한다. 피칭을 하는데 그는 무려 5초 이상이 걸린다. 그의 팔을 독특한 스타일로 그의 머리위로 쭉 뻗는다. 그는 대충 그 자세를 매번 10초간 유지한다.

“일본인 선발투수가 있는 클럽하우스에 또 다른 일본인 선발투수가 왔던 사례는 없었다. 노모는 전사다. 나는 노모가 이시이에게 정말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이시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노모의 영향이었다.” 새로운 천재 단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다저스의 댄 에번스 단장의 말이다.

이시이의 영입은 성공적이었다. 이시이는 1981년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루키로 기록되고 있다. 이시이에 앞서 노모도 열풍을 일으키며 메이저리그 데뷔를 한 바 있다.

두 선수를 비교한다면 짐 콜번 투수 코치의 말 처럼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부터 93년까지 일본의 퍼시픽리그 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 투구코치로 활동했고 1996년부터 2000년까지 매리너스의 퍼시픽리그 스카우트로 활약했던 콜번은 이치로 스즈키, 사사키와 계약하는데 공을 세운 바 있다. 콜번 코치는 스페인어 능력도 뛰어나다.

콜번은 “노모를 한 인간으로서 좋아한다. 그는 감성적이고 성실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하는 시간에는 매우 책임감이 있다”고 칭찬했다.

다저스 동료들은 ‘이시이가 노모를 굉장히 존경하고 있고 그 두 명이 굉장히 친하다’고 전했다. 더욱이 노모는 이시이가 미국 야구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이시이는 “우리는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내가 질문할 때마다 많은 조언을 해준다. 또 우리는 다저스가 승리하는 팀이 되길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모는 “이시이는 일본에서 10년 동안 뛰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가 편안함을 느끼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모는 1995년 미국에 왔을 때 시즌 성적 13승6패를 기록했다. 당시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낮은 피안타율(.182)로 내셔널리그의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다. 1964-65시즌 마사노리 무라카미가 자이언츠에서 던진 이후에 최초로 빅리그에 진출한 일본선수인 그는 개척자였다. 노모는 미국땅을 밟은 선수 중 최초로 성공한 일본 출신 선수다.

노모가 1995년 텍사스에서 열린 올스타 경기에 참석했을 때 약 100여명의 일본언론들이 그를 따라다녔다. 카메라맨은 그를 따라서 선수대기실에까지 들어가려고 했다. 다저스의 1루수 에릭 캐로스는 “노모는 그를 따라 다니는 기자들로 인해 항상 갈 곳이 없었다. 지금의 이시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취재 열기가 대단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시이는 “노모의 놀라운 활약은 후배들이 이곳에서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다. 내가 이곳에 왔을 때 잘 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소세지보다 스시가 더 익숙한 선수들에게 다저스는 다른 팀은 제공할 수 없는 편안한 환경을 제공한다. 팀에서는 선수들의 친구로 통역관 스캇 아카사키를 고용했다.

일본 선수들에게 가장 편안한 환경은 바로 콜번 코치의 존재다. 이시이는 “같은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나를 너무 편안하게 한다. 우리가 같은 언어로 의사사통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1998시즌 일본의 한신에서 뛰었다가 다저스로 돌아온 내야수 데이브 핸슨은 일본시절 이시이와 15∼20번 맞대결을 통해 가치를 측정한 바 있다.

“그는 (일본에서) 나를 굴복시켰다. 그는 나에게 공을 뿌렸고 나는 몇 개의 안타를 쳤다”고 핸슨이 말한다. “하지만 그의 재능은 명백하다. 그리고 그의 정신력은 우리의 야구 스타일과 더욱 닮았다. 일본야구와 미국식 야구에는 차이점이 있다. 우리는 더욱 공격적이고 투수들은 타자들에게 도전을 한다. 일본에서는 기교적인 투수들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이시이는 공격적으로 던졌고 그는 타자들을 보내버리는 오프스피드 구질과 셋업피칭을 가지고 있었다”.

초반의 좋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이시이 마니아는 LA에서 페르난도 마니아나 노모 마니아를 따라 잡지 못하고 있다.

1995년 노모가 데뷔를 했을 때 그의 경기는 일본의 13개 도시에서 가장 교통체증이 심한 곳의 대형 스크린 TV를 통해 중계되었다. 이시이에 대한 관심은 비교적 시들한 편이다.

노모 이시이

33나이28

우투투구좌투

6-2신장6-0

221체중190

도쿄출생지지바

78-46일본승패78-46

4백50만불2002연봉90만불

[원 저작권자: 베이스볼 위클리]

[한국어 저작권자:ICCsports.com]

[위 기사는 베이스볼 위클리 한국어 서비스 http://iccsports.com/bw에서 제공한 것이며 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