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장거리전화 부문 2위 업체 월드컴의 파산으로 세계 각국의 대형 통신업체들은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줄어든 수입과 불어난 부채를 회계 조작으로 무마하려다 끝내 파산에 이른 월드컴의 사례가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통신사업은 몇 해 전만 해도 어느 나라에서나 ‘황금알을 낳는 업종’으로 통했다. 그러나 경기 둔화와 수요 감소로 AT&T, BT, 보다폰, NTT와 같은 세계시장의 메이저 통신업체는 올 들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이들 기업은 과도한 해외투자, 3세대 휴대전화 사업권 획득 등으로 자금사정이 나빠지자 구조조정 노력과 함께 데이터통신 분야의 새로운 수익원 창출에 부심하고 있다.
한국은 올 들어서도 이동통신업체들의 흑자행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초고속인터넷 업체들의 수익성도 좋아져 아직까지 ‘무풍(無風)지대’로 꼽힌다. 그러나 휴대전화 및 초고속인터넷 시장에서 포화조짐이 나타나고 최대 통신업체인 KT(옛 한국통신)의 민영화라는 변수도 겹쳐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 때문에 KT, SK텔레콤 등 국내 통신업체들은 해외의 주요 통신회사의 생존전략을 면밀히 보면서 다가올 글로벌 경쟁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음성전화 사업에는 미련이 없다〓일본의 최대 통신업체 NTT는 올해 4월 3개년 경영개선 계획을 발표하면서 주력사업인 유선전화에 사실상 작별을 고했다. 2001년 회계연도에서 사상 최대규모인 8121억엔의 적자를 낸 데 따른 긴급처방이었다.
NTT가 음성전화 시장의 대안으로 주목하는 사업분야는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광대역(broadba-nd) 데이터통신 시장. 적자폭이 늘고 있는 유선전화망 투자를 중지하는 대신 가정까지 광통신망(FTTH)을 설치하는 작업을 본격화했다.
미국의 AT&T는 장거리전화 분야의 수익성이 나빠지자 시장 전망이 좋은 휴대전화와 데이터통신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기존의 사업부문도 수익 극대화를 위해 AT&T와이어리스, AT&T브로드밴드 등 4개의 독립된 회사로 분리했다.
미국의 종합통신업체 버라이즌은 데이터통신과 휴대전화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려 총매출액에서 데이터통신과휴대전화가차지하는비중을 2000년 각각 9%와 22%에서 내년에는16%와3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국내시장의 대표적인 유선업체인 KT가 첨단통신 업체로서의 이미지 부각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 성인수 KT 네트워크본부장은 “미래 시장의 판도는 유무선을 통합한 광대역 데이터통신 분야에서 갈릴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경영은 대세(大勢)〓세계 통신시장은 글로벌 거대기업 체제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소수의 거대기업이 세계 각 지역 통신업체의 지분을 나눠 갖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 대형 통신업체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업비용을 줄이고 싸고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으로 글로벌 경영에 눈을 돌리고 있다. 사업성이 좋은 한국시장은 집중 표적으로 떠올랐다. 영국 최대의 휴대전화업체인 보다폰은 프랑스 SFR, 독일 보다폰D2(옛 만네스만)를 비롯해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스웨덴 호주 미국 중국 일본 등의 시장에 진출해 가장 성공적인 글로벌 경영체제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국의 BT는 한국의 LG텔레콤을 비롯해 프랑스 SFR, 네덜란드 텔포트, 홍콩 스마트원, 싱가포르 스타허브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도이체텔레콤은 자회사의 이동통신 브랜드를 ‘T모바일’로 통합해 영국 네덜란드 미국 등의 시장에 진출했다.
NTT의 자회사 NTT도코모는 홍콩 허치슨(25%), 싱가포르 스타허브(22%), 영국 허치슨3G(20%), 네덜란드 KPN모바일(15%), 미국 AT&T(16%) 등의 지분을 확보, 무선인터넷 ‘i모드’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SK텔레콤 경영전략실 조신 상무는 “해외업체들의 글로벌 경영은 내수시장에 안주하고 있는 국내업체에는 큰 위협 요인”이라며 “국내 업체들은 무선인터넷 인프라 수출, 해외 이동통신 컨설팅 등 독자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 글로벌 경쟁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기존 가입자들의 사용량을 늘려라〓통신시장 불황의 주된 원인은 시장 포화에 따른 수요 감소.
세계적으로 유선시장은 포화상태에 가까워졌고 휴대전화 분야도 비슷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유럽시장의 휴대전화 보급률은 70∼80%나 돼 더 이상 신규가입자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 이에 따라 각 기업은 새 고객을 유치하기보다는 기존 가입자들의 서비스 이용시간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본격화하고 있다. BT는 채무 압박으로 3세대 휴대전화 자회사인 BT 셀넷을 매각했고 AT&T와 추진한 콘서트 컨소시엄에서 철수했다. 도이체텔레콤은 프랑스텔레콤(FT)과 합병한 ‘글로벌원’의 지분을 처분하고 비(非)주력분야의 해외자산 매각을 추진 중이다. 이미 해외투자로 2조엔의 손실을 본 NTT도코모는 해외 투자를 줄이는 대신 가입자당 매출액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애틀라스리서치그룹의 한지형 연구원은 “음성전화망이 인터넷과 통합되면 전송속도는 지금보다 수 천배 빨라지지만 업체들의 매출은 10% 이하로 감소하는 엄청난 ‘시장축소’가 예상된다”며 “이에 따라 통신업체들이 고수익 핵심사업에 집중하려는 추세가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
주요 글로벌 거대통신업체의 투자현황업체지분 참여 중인 투자대상 업체보다폰SFR(프랑스) 보다폰D2(독일) 옴니텔(이탈리아) 리버텔(네덜란드) 에어텔(스페인) 유로폴리탄(스웨덴) 보다폰(호주) 제이폰(일본) 버라이즌(미국)NTT도코모허치슨홍콩 스타허브(싱가포르) 허치슨3G(영국) KPN모바일(네덜란드) AT&T(미국) 버라이즌버라이즌와이어리스(미국) 옴니텔(이탈리아)도이체텔레콤T모바일(독일 영국 네덜란드) 보이스스트림(미국)프랑스텔레콤오렌지(프랑스) 더치톤(네덜란드) 윈드(이탈리아)BT비아크인터콤(독일) SFR(프랑스) 텔포트(네덜란드) 자료:통신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