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으로는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용감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숙연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의(義)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생명까지 던지는 일이다. 불길 속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시민을 위협하는 강도를 잡기 위해, 자동차에 칠 위기의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나섰다가 목숨을 잃은 경우가 그렇다. 119구조대원들처럼 위험에 빠진 시민을 살리려다 장렬하게 숨진 많은 공직자들도 잊을 수 없다.
▷지난해 초 일본 도쿄의 전철 선로에 추락한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고 몸을 던졌다가 숨진 한국 유학생 이수현(李秀賢)씨의 얘기는 아직도 우리 가슴에 남아 있다. 국적을 초월한 그의 인간사랑은 일본열도를 슬픔과 감사의 마음으로 울렁거리게 했다. 당시 일본총리는 “그의 죽음이 일본 젊은이들에게 모범이 되도록 가르치고 싶다”며 경의를 표했다. 올 가을에는 그를 추모하는 음악회가 일본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극치에 달한 오늘의 세태 속에서 이들 의인(義人)의 정의감과 희생정신은 우리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참다운 삶인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해준다.
▷이번에는 한 대학생이 시민의 핸드백을 날치기해 달아나던 소매치기범을 붙잡으려다 자동차에 치여 숨진 사건이 일어났다. ROTC장교로 군복무를 마치고 고려대 행정학과에 편입해 고시공부를 하던 장세환씨. 평소에도 그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바로 행동에 옮기는 의협심이 남다른 젊은이였다고 한다. 장씨가 지난해 말부터 쓴 일기장 첫부분 ‘나의 다짐’에는 ‘불의와 절대 타협하지 않고 정도를 지킨다’고 적혀 있었고, 수첩에는 ‘내 생명 조국과 같이 하려고 나 여기 왔노라’는 이은상(李殷相) 시인의 시 구절도 적혀 있었다. 생전의 다짐들을실천한 그의 삶이 참으로 감동을 준다.
▷우리는 지금 정의보다는 비리가, 사람보다는 돈이, 남보다는 내가 먼저인, 그래서 희망보다는 절망이 많은 세상을 살고 있다. 이 험악하고 황폐한 세상에 그래도 장씨 같은 사람이 있어 우리 사회는 아직도 따뜻함과 의로움을 조금이나마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그 목숨을 남을 위해 바치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희생이다. 비록 한줌의 재로 변했지만 그의 살신성인(殺身成仁) 정신은 오래오래 우리의 가슴에 살아 숨쉴 것이다. 그의 고귀한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은 살아 있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