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교수가 서울대 총장에 임명되었다. 정 총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서울대가 어떤 방향으로 운영되느냐 하는 것은 우리나라 대학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서울대 발전을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해본다.
첫째, 신임 총장은 최고의 도덕성을 유지해야 한다. 정 총장은 재임 중에 다른 공직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다. 관례상 판공비가 필요하지만 경비를 최소화해서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둘째, 교수를 공채할 때 본교 출신 선호정책을 철폐하고 가장 우수한 후보자를 임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선진국의 대학들처럼 교수취임 강의제도를 도입하기를 권고한다.
▼총장권한-보직교수 줄여야▼
셋째, 한 학과에 최소 한 명씩 진정한 의미의 석좌교수제도를 실시하기를 추천한다. 석좌교수는 별도의 예산에서 한 명의 비서, 교육조교, 연구조교 등의 교수 보좌인원을 확보해서 잡무에 시달리지 않고 강의와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독일 대학의 정교수(C-4교수)는 모두 석좌교수(Lehrstuhl)인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대학에도 석좌교수가 많이 있다.
넷째, 외국인 교수를 과감하게 많이 채용하라. 교수를 국내인으로만 채용해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적인 대학이 될 수 없다. 스위스의 취리히국립공대(ETH)에는 외국인 교수가 30%나 된다.
다섯째는 우수한 학자를 발견하면 조교수 부교수를 거치지 않고 바로 정교수로 임명할 수 있도록 교육인적자원부를 설득해 고등교육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는 26세에 라이프치히대의 물리학 정교수가 되었고 파울리는 28세에 취리히국립공대의 정교수가 되었다. 페르미도 26세에 로마대의 물리학 정교수가 되었고 미국의 슈윙거도 29세에 하버드대의 정교수가 되었다.
여섯째, 보직교수의 수를 대폭 줄여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보직교수가 많은 나라도 찾아보기 힘들다. 독일 대학과 일본 대학에는 교무처장, 기획처장, 연구처장 같은 직책이 없다. 모두 사무국장의 소관이며 독일 대학에서 사무국장의 임기는 보통 10년이다. 독일 대학에서는 대학원장이라는 직책도 없다. 그리고 부총장은 상근직이 아니며 사무실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일본 대학에도 전체 대학원장은 없고 각 학부장이 해당 분야의 대학원장을 겸하고 있다. 미국 대학에서는 부총장(Provost 또는 Executive Vice President)에게 많은 권한이 위임되어 있다. 대체로 총장은 대외적인 일을 담당하고 부총장이 대내적 업무를 책임지게 되어 있다. 모든 학장은 부총장에게 업무보고를 하고 결재를 받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 대학들도 점차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재의 제도는 총장에게 너무 많은 권한과 책임이 부여되어 있다.
일곱째, 기초학문을 육성해야 한다. 이 점은 정 총장도 이미 언급했기 때문에 다행으로 생각한다. 서울대는 2001년에 765명의 박사를 배출했다. 특히 이학(理學)이 136명, 공학(工學)이 231명이나 되는 것은 재고할 일이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가장 많이 수여하는 대학이 캘리포니아 주립 버클리대인데 연간 770명선이다. 따라서 문제는 숫자에 있지 않고 서울대의 박사학위가 미국 일류대학 학위와 질적으로 대등하게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여덟째, 대학의 구성원들도 변해야 한다. 교수 직원 학생들은 변하지 않고 총장 한 사람이 대학을 개혁해서 세계적 대학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수들도 신임 총장의 업무 수행에 최대한 협조해야 하며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발목을 잡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신이 속한 학과와 단과대학의 이익을 먼저 생각할 것이 아니라 서울대 전체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교수들이 한마음으로 지지해줄 때 총장이 정부에 가서 강력한 요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학위수여 숫자보다 질 중요▼
아홉째, 학생들도 결코 총장실을 점거하는 등의 과격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문명국가의 대학에서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농성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일대에서 80년대에 인종차별정책을 실시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재단기금을 투자했는데 그것을 반대하는 학생들의 평화적 시위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은 결코 폭력적 시위를 하지 않았다.
교수 직원 학생 동문들이 힘을 합해 신임 총장을 도와 서울대의 발전을 이룩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장수영 포항공대 교수·전자공학·전 포항공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