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을 단순히 기술이 아닌 동아시아 문화의 일부로 해외에 보급하는 데 힘쓰겠어요.”
1994년 여류 프로 기사(棋士)로는 처음으로 서울대 영문학과에 입학했던 남치형(南治亨·27) 초단이 24일 영문학 석사가 됐다.
서울대 인문대에서도 논문자격시험과 논문심사가 까다롭기로 이름난 영문학과 석사과정을 이수하는 동안에도 남 초단은 대국에 빠지지 않았다.
“물론 승률은 좋지 않았지만 후회는 없어요. 참가하는 데 의미를 두기도 했고요.”
초등학교 6학년 때인 87년 유명 서예가이자 아마 2급 실력의 아버지 남두기(南斗基·52)씨의 손에 이끌려 바둑에 입문한 남 초단은 90년 15세 때 여류 입단대회를 통해 프로가 됐다.
프로에 입문할 때만 해도 ‘최고 여류 기사’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초단이다. 바둑 이외의 것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창 기력이 왕성할 입단 4년차였던 93년 바둑을 1년간 쉬면서 대학입시 공부를 했고 대학을 다니면서도 사법고시 공부를 하는 등 ‘외도’가 잦았다.
“대학은 꼭 가야 된다고 생각해 시험공부를 했어요. 97년 시작한 사시는 99년 법원 판결을 거치는 우여곡절 끝에 1차에 합격했지만 4개월간 2차시험 공부를 하다 아니다 싶어 그만뒀지요.”
바둑의 길로 이끈 아버지도 99년 남 초단이 대학원 공부를 하겠다고 말했을 때 “너에게 맡긴다”며 순순히 승낙했다.
98년 명지대에 생긴 바둑학과에서 겸임 조교수를 맡고 있는 남 초단은 바둑을 하나의 기술로만 여기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공부를 계속해야겠다는 생각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들었어요. 한국 바둑의 해외 보급이 활발하지만 서양인들은 단순히 기술로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학문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 초단은 바둑의 문화적인 접근을 위해 인류학을 공부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은 예술사 등 좀더 세분해서 아시아 문화로서의 바둑을 공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4일에도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월드컵 개최도시 대항전’ 대국을 가진 남 초단은 현재 KBS에서 바둑 해설을 하고 모 스포츠신문의 기보(棋譜) 해설도 맡고 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