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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백두산 서편 능선 종주, 들꽃향에 젖어 “어느새 천지네”

입력 | 2002-07-24 18:11:00

백두산 천지아래쪽 노호배 등선 [사진=조성하기자]


침처럼 길쭉한 하얀 꽃잎이 뚝하고 꺾인 채 무리지어 모여 접시모양 한송이 꽃을 이루는 바이칼 꿩의 다리. 진보랏빛인지 진남빛인지 볼 때마다 혼란스러운 묘한 빛깔의 비로용담. 노란, 주황색 꽃잎을 백합처럼 화사하게 하늘로 활짝 펼친 날개하늘나리와 원추리. 키작은 연보랏빛 꽃이 구름처럼 무리지어 피는 구름국화. 손부채 모양의 샛노란 꽃잎으로 땅에 누운 늙은 호랑이의 등짝처럼 넉넉한 품새의 능선 아름다운 백두고원 노호배(老虎背)의 초록세상에서 색의 반란을 주도하는 애기금매화. 날카로운 매발톱 모양의 남빛 꽃이 아름다운 하늘매발톱….

백두산 천지 바깥의 서편 아래 백두고원(해발 1700m 이상). 키 큰 나무대신 키 낮은 관목(20㎝ 아래 나무)으로 뒤덮인 해발 1700m 이상 고원, 그리고 그 아래 숲가 초원에서 만난 이 들꽃들. 비록 중국땅 백두산에서 피지만 어느 하나 낯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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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백두산의 7월 1  2

군락 이뤄 동시에 피고 지는 ‘우리 들꽃님’. 그 고운 자태로 산과 들을 치장하는 이 꽃. 백두산 바깥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신선풍의 풍경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니잖은가. 엄연히 여기는 중국땅(지린성 안투현)이니. 산 이름조차 창바이(長白)다. 그러나 ‘우리’에겐 아니다. 누구도 여기서 중국을 느끼진 못한다. 중국이기 전에 이곳은 백두산이기 때문이다.

해발 2200m까지 자동차로 오른 고원. 천지 가장자리의 청석봉 아래(해발 2500m)까지 불과 40분이면 오른다. 5년 전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사람 흔적 전혀 없던 이곳. 지금은 1천 수백개나 되는 화강암 돌계단이 놓여 있다. 찾는 이가 늘었음이리라.

금강대협곡의 장대한 모습

이날 백두산 서쪽으로 천지를 오른 한국인은 47명. 청석봉에서 한 팀은 외륜봉을 종주해 천문봉 아래 북쪽으로, 한 팀은 노호배를 거쳐 찬치퍼의 사스래나무숲으로 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산할아버지는 심술궂었다. 짙은 안개와 비로 외륜봉 종주는 포기해야 했다.

노호배로 내려가는 들꽃트레킹. 천지부터 수목생장한계(해발 1700m)인 사스래나무숲까지 이어지는 고도차 500m의 부드러운 능선을 지난다. 나무 한 그루 없는 거대한 초원. 만병초 같이 지표식물처럼 땅에 붙은 채 자라는 키작은 초록빛 관목 일색이다. 능선의 양편. 깊이가 200∼300m나 되는 계곡 아래로 물이 흘렀다. 계곡 너머도 연록빛 초원이다. 어디서나 흐드러지게 핀 들꽃. 이 백두초원의 주인은 들꽃인 듯했다.

가장 먼저 눈 속에서 핀다는 만병초를 비롯해 비로용담과 노란 애기금매화, 구름국화가 초원을 뒤덮었다. 안개 걷히며 드러나는 들꽃으로 하얗게 노랗게 뒤덮인 초원. 사람들의 환호가 떠날 줄을 몰랐다. 그 꽃밭에 철퍼덕 앉아 도시락을 까먹었다. 그 맛이란. 멀리 하얀 살결 보드라운 사스래나무숲, 그 아래 거대한 정원인 금강분지가 보였다.

하늘매발톱 - 날개하늘나리

하루 전 찾았던 금강분지. 꽃대궐이었다. 푹 파인 지형의 땅은 온통 연록빛 초원으로 뒤덮여 마치 정원같았다. 그 곳을 찾아 떠나는 한시간 가량의 평지트레킹. 온통 꽃으로 뒤덮인 평원을 가로지르는 환상의 코스다. 꿈인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원앙의 보금자리인 왕지(王池) 찾아 가는 길. 그 들판은 더했다. 온통 바이칼 꿩의 다리로 초록평원은 눈처럼 하얗다. 온 사방이 꽃으로 뒤덮인 세상. 금강대협곡을 보고 나면 백두산을 다시 보게 된다. 몇해전 우연히 발견된 이곳. 동양의 그랜드캐니언이다. 규모만 작지 아름답기는 미국 것보다 낫다할 만하다. 트레킹 후 발이 에일 듯 차가운 시냇물가 진주온천(노천)에서 뜨거운 모래바닥을 비비며 즐기는 발온천욕. 백두산 트레킹의 백미다.

천지 서쪽에서 천지 북쪽으로 가는 길. 천지 아래 해발 1000m 고원의 비포장도로를 4시간이나 달린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숲길.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백두산 꿀맛 보는 양봉원, 백두산의 자연생태를 보여주는 자연박물관(장백산국가급자연보호구관리국)도 있다.

개불알꽃 - 애기금매화 - 구름국화

마지막 일정은 지프로 오르는 북쪽 천지관광, 장백폭포 아래 호텔의 온천욕. 청석봉에서 천지를 못 볼 경우에 대비한 대안코스다. 가보니 무척 많이 변해 있었다. 지프도 새 차로, 운전기사도 친절했다. ‘강제팁’ 미화 10달러까지는 참을 만했다. 그러나 천지배경 기념촬영비는 좀 심했다. 서쪽과 달리 여기는 중국을 느낄 수 있었다. 중국인의 상술이란, 참….

▼백두대간 종주팀 이끄는 이종승씨▼

“체력이 아닙니다. 정신력입니다.”

15일 백두산 천지 16기봉 가운데 서편의 청석봉(중국 지린성 안다오현) 밑. 네 번째 백두대간 종주팀을 이끌고 천지에 오른 승우여행사 이종승사장(58)의 말이다.

천지(天地)가 한눈에 들어오는 외륜봉 가장자리지만 짙은 안개에 갇혀 발아래 천지(天池)는 보이질 않았다. 그래도 종주팀 13명은 감격에 겨워 흥분했다.

“이번엔 210명이 도전했지요. 하지만 2년 4개월간 55차례나 계속된 종주산행에 단 한차례로 빠지지 않은 분은 송영길씨(59)등 8명(26일 오를 2차팀 2명 포함)뿐입니다. 평균연령(52세)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대간종주가 체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요.”

이번 종주산행이 시작된 것은 2000년 2월 26일 지리산 천왕봉에서다. 길고 험한 대간종주는 향로봉까지 이어지는 남쪽 대간의 산줄기를 55개로 나누어 매달 두 차례 주말산행(무박)으로 차례차례 밟는 형식.

참가자 가운데는 초보자도 있었다. 공통점이라면 그 한달전 본보 여행면(1월 20일자)에 소개된 죽마고우인 이 사장과 박희국씨(57)가 세 차례나 함께 해온 백두대간 종주스토리를 읽고 결심한 것.

현재 남은 종주팀원은 43명. 이 사장은 이들 가운데 올여름 승우여행사의 백두산 들꽃트레킹으로 대간종주의 마침표를 찍는 23명(2차팀 10명 포함)에게는 완주패도 선사할 계획이다. 백두고원 뒤덮은 들꽃 보느라 천지산행을 앞당기는 바람에 구룡령∼향로봉 구간(산행 5회)은 뒤로 미룬 상태. 10월 27일까지는 모두 다녀올 계획이다.

“10월 5일부터 백두대간 종주산행(산행 65회)을 새로 시작합니다. 저로서는 다섯 번째지요. 이번에는 대간의 지맥과 줄기까지 섭렵할 계획입니다.” www.swtour.co.kr 02-720-8311

▼여행정보▼

들꽃 트레킹은 1995년 중국국가급자연보호국(서파)에서 개발한 루트. 완벽하게 보존된 자연환경 속에서 즐기는 5성(星)급 생태관광 프로그램이다. 들꽃 절정기인 6월말∼8월중순이 최적기. 백운봉산장(해발 1500m)에서 숙박하며 버스(혹은 지프)로 이동하며 트레킹을 즐긴다. 코스는 △금강분지와 금강폭포 △왕지와 고산화원 △천지(청석봉)와 노호배 등. 외륜봉 종주에는 10시간 소요.

▼함께 떠나요▼

중국 자연보호국과 함께 95년 서파의 들꽃트레킹 코스를 개발한 백산기획(대표 최희주)과 아웃도어세븐(대표 윤치술·www.outdoor7.co.kr)에서는 매년 6월말∼8월중순 트레킹을 떠난다. 일정은 4박5일(서울↔옌지 항공기왕복). 서울∼장춘∼얼다오바흐어(1박)∼서파(1박)∼트레킹∼북파(1박)∼룽징∼옌지∼센양(1박)∼서울. 윤동주시인 같은 항일투사를 키워낸 룽징의 대성중학교, 센양의 북한음식점 ‘평양금강산’에도 들른다. 8월 17일 21일 24일 3회 출발. 02-2285-5322

백두산〓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