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만 앙상하게 남은 남자가 침대 위에 등을 보이고 앉아 있다. 내레이션과 함께 다음과 같은 자막이 이어진다.
자막1:14세,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나이. 그때 그는 처음 시작했다.
자막2:39세, 암이 찾아왔다.
자막3:49세, 그는 34㎏밖에 나가지 않는다.
자막4:14세에 시작하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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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부터 프랑스 최대 민영방송인 TF1과 뉴스 전문방송인 LCI의 전파를 타기 시작한 27초짜리 공익 금연광고의 내용이다. 광고에 등장한 리샤르 구르랭이라는 49세 남자는 실제로 폐암 말기 환자였다. 충격적인 광고여서 프랑스가 들끓었다. 구르랭씨는 이 녹화 화면을 찍은 뒤 5일만에 사망했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흡연에 비교적 관대한 프랑스에서 암환자를 등장시킨 금연 광고는 이번이 처음.
1999년 1월 사망한 구르랭씨는 흡연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부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찍게 했다고 광고를 제작한 프랑스 전국금연운동위원회(CNCT)측은 밝혔다.
일간지 르피가로는 23일 1면 머리기사로 이 광고가 던진 충격파를 다뤘다. 한국에선 이주일씨가 금연 태풍을 일으킨 바 있고, 미국과 영국에서도 충격요법의 금연광고가 다반사다.
그러나 프랑스는 금연광고조차도 미학적이며 덜 직설적이었다. 광고가 나가자 “너무 심하다” “앵글로 색슨(미영) 스타일을 따라가기냐”는 반응이 쏟아졌다.
지난달에도 프랑스 신문과 방송에 다음과 같은 광고가 실렸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섭취하는 음식 중에 청산(靑酸) 수은 아세톤 암모니아 같은 독성 물질을 함유한 것이 있다. 알고 싶으면 전화하라.’
광고에 남긴 전화번호로 무려 130만명이 전화를 걸었다. 그 음식은 담배였다.
50, 60년대 프랑스의 천재 소녀작가였던 프랑수아즈 사강은 마약 복용으로 재판을 받으면서도 “나는 나를 파멸시킬 권리가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었다. 그러나 점점 심각해지는 흡연의 위험이 ‘담배를 피고, 안 피고는 개인이 판단할 일’이라는 프랑스식 개인주의 전통에도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6만명이 직간접 흡연의 영향 때문에 사망한다.
박제균 파리특파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