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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르고 나서]사랑만큼 사람을 뒤흔드는 것이 또 있을까

입력 | 2002-07-26 17:55:00


사랑도 해 본 사람이 잘 한다고 합니다.

1면에 소개한 저자 알랭 드 보통은 자살까지 시도했던 첫사랑의 열병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파리들은 맑은 유리창을 뚫고 날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 계속 유리창에 머리를 박지만 인간은 여러 번의 사랑의 경험을 통해 지혜를 얻게 돼 삶의 실수가 줄어 든다는 것이지요. 식사나 죽음 돈에 대해서도 지혜로울 수 있듯, 사랑에 대해서도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사랑만큼 사람을 뒤흔들어 대는 것이 있을까요. 21세기의 신흥종교라고 일컬어지는 사랑은 사람의 다양성만큼이나 그 모양과 색깔이 제각각입니다.

그러나 알랭 드 보통이 털어놓는 사랑의 담론들을 듣다 보면 지구 반대쪽에서 살고있는 서양 남자의 경험이 어쩌면 이렇게 우리와 비슷할까 하는 공감이 놀라워 급기야, 동시대를 살고있는 사람들의 연대감까지 느낄 정도입니다. 현대는 역시 이념이 아니라 일상의 시대라는 것을 다시 확인케 해주기도 하구요.

또 한가지, 그의 글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유쾌함입니다. 무거운 주제, 무거운 접근 방식에 익숙한 우리에게 그의 글은 신선감을 줍니다. 친구에게 애인을 뺏기는 흔한 상투적 상황에서도 질질 짜거나 복수하면서 상대를 증오하거나 비관적이 되는 극적인 사건을 만들지 않고도 충분히 웃을 수 있게 만들고 생각할 꺼리를 만들어 줍니다. (최근 나온 그의 또 다른 번역서 ‘드 보통의 삶의 철학산책’(생각의 나무)을 보면 복잡하고 힘겨운 삶을 유쾌 통쾌 상쾌로 만드는 그의 재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철학자이기 때문이라기보다 자기의 변화된 심경을 남의 일처럼 냉정하게 받아 들이며 그 하나 하나에서 교훈을 얻으려고 하는 서양의 합리적 태도가 바탕에 있다고 한다면 과장일까요? 이에비해 1면 하단에 함께 실린, 김교수님의 사랑론은 동양적 사고에 바탕을 둔 우리 사회 어른의 깊은 성찰이라 다른 의미에서 울림이 큽니다.

어쨌든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라고 합니다. 책 제목이 ‘왜 나는 너를 사랑했는가’가 아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된 이유를 아시겠지요?

이 책은 1995년에 ‘로맨스’(한뜻·김한영 옮김)란 제목으로 간행된 적이 있으나 절판되었다가 이번에 다시 나왔습니다.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섹션 인 섹션’ 개념으로 2면에 ‘테마북스’를 강화했습니다. 매년 휴가철엔 그동안 읽을 만한 책을 한번에 몇권씩 선정해 왔으나, 올해엔 놓칠 수 없는 신간들이 부쩍 늘어난데다 보다 깊이 있는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주간별로 테마를 정해 소개하겠습니다. 우선 ‘추리소설’을 정리했습니다. 다음 주엔 ‘생각하는 여행’이라는 테마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름철 감면 주간으로 인해 격주로 수요일에 발행해오던 ‘키즈 섹션’이 8월 중순까지 쉼에 따라 그 지면에 소개해오던 어린이 책들을 당분간 책의 향기 6면에 옮겨 소개합니다. 많은 관심과 양해를 바랍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