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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북스]여름철 볼만한 추리소설

입력 | 2002-07-26 17:55:00

추리문학의 거장 애거사 크리스티[사진제공=박광규씨]


#왜 추리소설을 읽는가

추리 소설을 읽는 것은 여름 밤, 그것도 비 오는 날이 제격이다.

에르네스트 만델의 추리소설 역사서 ‘즐거운 살인-범죄소설의 사회사’(이후)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추리 소설은 근본적으로 오락소설이다. 왜 하필 즐거워야 할 오락의 주제가 살인같은 흉악한 범죄일까?

한 마디로 실제로 범할 수 없는 범죄와 그 해결과정에 대한 대리만족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때로 악(惡)의 쪽에 더 매력을 느낄 수도 있고, 법률도 한번쯤 어겨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추리소설의 악인들은 대신 법을 어겨주며 탐정들은 법을 대변하는 파수꾼들이다.

추리소설에도 나름대로 원칙이 있다. 우선 범죄가 소재여야 하고 범죄의 해결이 주 내용이어야 하며 해결은 논리적이야 한다. 이 원칙들은 에드거 앨런 포가 1841년 ‘모르그 거리의 살인’을 발표한 이래 160여년간 골격을 유지하고 있다. 20세기 초반 유명 작가들이 여러 가지 법칙을 들고 나왔으나 현대로 접어들면서 유명무실해졌고, 위의 세 가지 원칙만 지키면 추리소설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영국 작가 H.R.F.키팅은 이런 분류가 서점이나 도서관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는데, 어쨌든 독자가 책을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도식성 때문에 영국의 여류작가 크리스티가 쓴 ‘애크로이드 살인사건’(해문출판사)은 추리소설의 룰을 어겼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추리소설의 역사

추리소설 창시자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나 근대 추리 소설의 시조는 천재 탐정 뒤팽을 등장시킨 에드거 앨런 포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채 못되던 1887년, 의사이던 코난 도일이 탐정의 대명사 셜록 홈즈를 탄생시키면서 추리 소설을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됐다. 추리소설 역사가들은 이른바 ‘수수께끼 풀이형’작품들이 득세했던 19세기 말부터 1930년대까지를 황금기라고 부른다.

한편 192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하드 보일드라는 혁명적 물결이 나타났다. 1929년 더쉴 해미트의 ‘붉은 수확’은 악을 이용해서 악을 물리치는 고전적 추리 소설 형태에서 벗어나 현실의 거친 세상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주로 집안이 무대였던 추리소설의 영역을 사회로 확장했다. 하드보일드 작가들은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줌으로써 추리소 설에 인간의 모습을 그려 넣어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후 추리소설은 50년대 경찰 소설과 60년대 스파이 스릴러 등을 거쳐 이제는 특별한 장르를 따로 붙이기 어려울만큼 복합적 요소를 갖춘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최근의 특징이라면 인간의 심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사건 해결 과정보다 사건의 원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추리소설

자생적으로 탄생한 서구의 추리소설과 그것을 받아들여 새로운 형식을 만든 일본에 비해 한국은 해외의 인기 경향을 얼기설기 들여온 탓으로 균형 발전이 어려웠다. 1935년 김래성은 ‘타원형 거울’을 일본 잡지에 발표하고, 이듬해 귀국한 이래 본격적인 추리 작품들을 발표해 국내 추리소설의 싹을 키웠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말기, 전시 체제의 강화로 위축된 추리소설은 6·25까지 겹쳐 1960년대까지 동면기에 들어가고 만다. 당시까지 뿌리를 내리지 못한 한국 추리 문학계에서 이 짧지 않은 공백기의 타격은 클 수 밖에 없었다.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 외국 추리 작품들이 번역 소개되면서 독자층이 서서히 저변을 갖추게 되자 국내 작가들도 차츰 자리를 잡게 되었다. 1969년 신춘문예로 데뷔하고 ‘여명의 눈동자’로 잘 알려진 김성종은 1974년 6·25를 배경으로 한 ‘최후의 증인’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현대 한국 추리문학의 문을 열었다.

이후 80년대 중견 작가군을 거쳐 90년대에는 PC 통신망을 발표 매체로 삼는 젊은 작가들이 등장했지만 외환위기 등으로 창작 추리소설은 매우 위축됐다.

이런 상황에서 셜록 홈즈, 아르센 뤼팽 등 한때 일세를 풍미했던 작품들이 최근 재등장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쉽게 구할 수 없던 고전 작품들이 새롭게 출간되고 베스트셀러로 이어진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추리소설이 마니아를 넘어 일반적인 독자들에게도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폴 오스터의 ‘스퀴즈 플레이’(열린 책들),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의 ‘뒤마 클럽’(시공사) 등 ‘지적(知的)’ 미스터리를 표방하는 현대 작품들의 출간도 힘을 더해 주고 있다. 최근 추리소설 출간 붐이 일과성에 그칠지 아니면 확고하게 뿌리를 내릴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적어도 추리소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은 확실해보인다.

박광규 추리소설 평론가·platypus@hana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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