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가리고 바둑을 둔다고? 두 눈 멀쩡히 뜨고 둬도 실수를 많이 하는데.”
최근 케이블 바둑채널 ‘바둑TV’에서 방송되는 ‘암흑 대결’ 코너가 이런 방식이다.
대국 방식은 이렇다.
두 대국자 모두 100수가 될 때까지는 안대를 하고 착점할 곳을 숫자(좌상귀 3, 7의 곳)로 불러 주면 보조 진행자가 대신 둔다. 제한시간은 30분. 만약 100수 이전에 안대를 풀거나 30분이 지나면 5집을 상대방에게 내준다. 또 착수금지인 곳(상대방 돌이 놓여 있는 곳 등)에 두면 1집을 손해본다. 단 100수가 될 때까지 1분간 안대를 풀 수 있는 기회를 한번 준다. 상대가 단수를 쳤는데 좌표를 착각해 한 줄 옆으로 두면 그대로 바둑이 끝나 버릴 수도 있다.
이번 대결은 최철한 한종진 안영길 4단 강지성 5단 등 4명의 신예가 참가했다.
토너먼트로 진행된 이번 대결에서 최 4단이 한 4단을, 강 5단이 안 4단을 물리치고 결승에서 맞붙었다. 결승 대국은 28일 오후 9시10분 방영 예정.
이번 대국에서 좌표를 착각해 실수한 것은 딱 두번. 최 4단과 한 4단의 대결에서 한 4단이 98수째 원래 두려던 곳보다 한줄 위쪽으로 둔 것. 한 수만 더 두면 안대를 풀 수 있는 상황에서 실수를 저지른 한 3단은 “이런, 미친…”이라며 자책하기도 했다. 다른 한번은 강 5단이 안 4단과 대결에서 착수금지된 곳에 둬 1집을 손해봤다.
최 4단은 강 5단과의 결승전에서 92수 째 제한 시간 30분을 넘겨 10집의 손해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최 4단은 “처음엔 눈을 가리고 두면 무척 어려울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쉬었다. 작전 구상할 때 헷갈리기는 해도 착점 자체를 결정하는데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했다.
암흑 대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95년 바둑TV가 개국할 때 프로기사가 눈을 가리고 아마기사와 접바둑을 두는 이벤트 대국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신인이었던 목진석 6단이 무려 121수까지 안대를 가리고 둬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천기환 PD는 “이번 대결을 통해 프로기사는 100수 언저리까지는 눈을 뜨고 두나 감고 두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 입증됐다”며 “다음엔 100수라는 제한을 두지 않고 눈을 감고 둘 수 있을 때까지 두는 ‘무한정 암흑대결’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