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원은 누가 보상합니까. 정부에 대한 불신은 어떻게 치유하고요. 제 실명(實名)을 공개해도 좋아요.”
2000년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태권도공원을 유치하기 위해 ‘극성스럽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던 김경회(金慶會·사진) 충북 진천 군수.
그는 본보 25일자 A1·8면에 보도된 ‘장관 따라 춤추는 정책…각종 사업 유치전 허탕 일쑤’의 한 사례로 태권도공원조성사업이 유보된 데 대한 자치단체의 입장을 취재하기 위해 23일 찾아간 기자에게 불만과 함께 충격적인 얘기까지 털어놨다.
“알려진 대로 태권도공원 유치를 위한 홍보자료 제작비 등으로는 2억여원을 썼어요. 하지만 그 후에도 진천군이 태권도의 고장임을 알리기 위해 세계태권도대회 등의 행사를 개최하느라 지출한 액수는 모두 10억원은 족히 됩니다.”
김 군수는 “정부가 태권도공원 후보지 선정을 미룸으로써 자치단체들의 예산과 행정력 낭비는 물론 치유하기 힘든 불신을 자초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아무리 민선 자치단체장이라도 중앙부처와의 관계를 고려해 불만은 털어놓되 익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 현실을 감안할 때 “실명을 공개해도 좋다”는 그의 말은 불만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했다.
이 사업의 ‘본말전도(本末顚倒)식 추진’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게 쏟아지고 있다.
다른 한 자치단체장은 “박지원(朴智元) 문화관광부 장관 때 기대 효과까지 설명하며 태권도공원조성 계획을 발표하고 후보지 신청까지 받았는데 후임 김한길 장관이 사업의 타당성 조사를 한 것은 정책결정을 즉흥적으로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화부 관계자는 24일 “아직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타당성 조사를 벌인 결과 태권도공원 사업은 계속 진행하되 규모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지만 이제 자치단체들은 이 말을 믿으려하지 않는 분위기다.
시군 관계자들 중에는 “장관의 약속이라면 지긋지긋하다”고 불만을 나타내는 사람도 많았다. 또 일부 공무원은 “원래 그런 것 아니냐”며 체념한 듯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일부에서는 장관이 말을 바꿀 경우에 대처하기 위해 장관의 말을 녹음까지 하는 경우도 벌어지고 있다.
충북도는 오장섭(吳長燮) 전 건설교통부 장관이 지난해 4월 호남고속철도 기본계획 용역기관으로 K연구원을 선정하자 “이 연구원은 충북도가 신뢰하지 않아 제3의 기관에 용역을 주기로 전임 이건춘(李建春) 장관이 약속했다”며 반발했다.
충북도는 건교부 측이 약속을 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자 이 전 장관 발언의 녹취록까지 제시해 결국 K연구원을 포함한 2개 연구기관에 용역을 의뢰하게 됐다.
대전〓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진천〓장기우기자 straw8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