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후암동 남산도서관이 계속 늘어나는 장서를 처리하지 못해 서가 사이에 쌓아놓는 바람에 통행이 불편한 것은 물론 건물 안전에도 큰 부담을 주고 있다. /권주훈기자 kjh@donga.com
28일 서울 용산구 후암동 남산도서관의 서고(書庫). 층마다 빽빽이 들어찬 장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천장과 벽 여기저기에 금이 가 있었다.
도서관 측은 붕괴에 대비해 각층의 서고 천장을 떠받치는 철제 기둥을 새로 설치하고 벽면의 내력을 보강하는 등 보수공사를 한창 진행하고 있었다. 또 서가와 서가 사이에 책을 쌓아놓는 바람에 통행하기에도 힘들었다.
황낙현(黃樂鉉) 남산도서관장은 “1964년 도서관이 문을 연 뒤 해마다 2만여권의 책이 새로 들어오지만 폐기되는 책은 1만권이 안 돼 장서가 계속 쌓이고 있다”며 “장서 무게를 견디지 못해 도서관 벽에 금이 가는 등 안전문제가 나타나 진단한 결과 위험하다는 판정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서울시내 주요 공공도서관 건물들이 나날이 늘어나는 장서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치명적인 안전 결함을 드러내고 있다.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 시행령에 따르면 도서관은 전체 장서의 3%, 전년도 구입 도서의 50% 이내에서 장서를 폐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용하는 독자가 거의 없어도 보존 가치가 있는 책이 많아 실제로 폐기되는 책은 이보다 훨씬 적다.
또 비교적 저가인 도서관 책이 소모품이 아니라 비품으로 분류돼 폐기 절차가 복잡한 것도 장서를 줄이기 어려운 요인 가운데 하나다.
이에 따라 서울시교육청 산하 21개 공공도서관의 경우 해마다 10만권 이상의 책을 추가로 보관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서관들은 일반 서가보다 1.5∼2배가량의 책을 더 보관할 수 있는 이동식 서가를 설치하는 바람에 건물 구조에 부담을 주고 있다.
22만3000여권의 장서를 보유한 동대문구 신설동의 동대문도서관도 건물 각층의 벽과 바닥에 균열이 생기고 부식된 철근이 드러나 있다.
김유희(金裕姬) 동대문도서관장은 “당초 일반 열람실로 설계된 방을 서고로 변경해 사용하다 보니 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며 “안전진단 결과 보수가 시급하다는 진단이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후암동 남산도서관에서 안전문제가 나타나자 식당에 천장을 떠받치는 철제 기둥을 설치해 놓고 있다.
옛 경기고 건물을 도서관으로 변경한 종로구 화2동의 정독도서관도 최근 실시한 정밀안전진단 결과 전반적인 구조 보강이 필요하다는 D등급 판정을 받았다. 종로도서관 등 10개 도서관은 2006년까지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내 도서관 관계자들은 더 이상 위험을 방치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24일 대책회의를 가졌지만 장서를 처리할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해 애태우고 있다.
도서관들은 장서 때문에 공간이 부족해지자 대신 열람실을 줄이고 있다. 77년 개관 당시 열람실이 13개였던 정독도서관은 현재 열람실이 9개로 줄었고 동대문도서관도 열람실 4개 가운데 1개를 내년에 서고로 바꿀 계획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은 몇 년 전 이용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열람실을 모두 서고로 바꿨다.
이상렬(李相烈) 정독도서관장은 “열람실을 서고로 변경하는 것도 이용자 불편과 건물 하중 부담 때문에 문제가 있다”며 “이용객이 적지만 보존 가치가 있는 책만 따로 보관하는 ‘보존서고’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