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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가 블랙박스][음악]가수 동의없이 제3자 양도

입력 | 2002-07-28 19:00:00


28일 공정거래위원회의 연예업계 불공정거래 제재 조치는 최근 급성장한 가요 영화 방송(연기자 모델) 등 연예산업의 전근대적 계약 및 거래 관행에 대해 ‘전방위 메스’를 가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간 우리 연예업계는 급속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사주의 일방적 기업 운영이나 업계 담합, 연예인에 대한 우월적 지위 남용으로 시장과 경쟁의 투명성을 담보할 만한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연예업계 사상 처음으로 4개월간 기획사와 업계 단체까지 조사의 칼날을 들이댄 것도 이 같은 문제 인식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연예업계는 “공정위 제재는 산업화 단계에서 불가피하게 수용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최근 검찰의 연예계 비리 수사에 이은 공정위의 ‘총체적’ 제재는 연예산업을 크게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가 밝힌 부문별 불공정거래 실태는 다음과 같다.

◆가요=‘플라이 투 더 스카이’ 등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는 가수가 계약 해지를 원할 경우 손해배상액을 계약금의 5배, 잔여 계약기간 예상 이익금의 3배, 별도 1억원 등으로 규정해 계약 해지를 사실상 ‘원천봉쇄’했다.

‘핑클’이 소속된 DSP엔터테인먼트도 상호 계약 위반으로 손해가 발생할 경우 가수가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했고 도레미미디어와 GM기획 등도 소속 연예인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연예인을 양도할 수 있는 규정을 넣었다.

SM과 예당엔터테인먼트, 대영A&V 등 8개 음반 제작사들은 공동으로 음반유통사 아이케이팝을 설립해 사실상 타사의 시장 진출을 방해함으로써 음반시장의 경쟁을 저해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수익자를 바꿀 경우 협회의 동의를 얻도록 해 작품자의 권리행사를 제한했다. 한국연예제작자협회는 MBC의 특정 프로그램이 편파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SBS 특정 프로그램의 출연료가 낮다는 이유로 회원사 가수들의 출연을 거부케 했다.

◆영화=‘무사’ ‘화산고’ 등을 제작한 영화사 ‘싸이더스’는 제작사의 잘못으로 영화 촬영이 중단되더라도 촬영 스태프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했고 ‘시네마서비스’는 계약 해석상 다툼이 있을 때는 기획사의 해석이 우선하도록 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영화 ‘가디안’의 출연 계약을 파기한 배우 유오성을 소속사들의 영화에 출연시키지 않기로 결의했다.

◆연기자 및 모델=MTM커뮤니케이션과 방송연기문화는 수강생의 방송 출연을 강요하고 TV 출연료의 수수료를 기존 연기자보다 더 높게 받았다. 또 ‘2만여명의 연기자 DB 구축’ 등 사실과 다른 허위과장 광고를 내보냈다. 에이스타스엔터테인먼트 및 에스케이글로벌도 모델선발대회의 입상자들에게 출연료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한국모델캐스팅사업자총연합회와 한국프로필사진작가협의회는 상호간에만 모델과 프로필 사진을 교류하기로 하고 이를 어긴 3개 회원사를 제명해 경쟁 사업자의 활동을 제한했다.

◆업계 반응과 전망=공정위는 연예업체들이 이번 조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검찰 고발도 가능하므로 관련 업계의 불공정 행위가 상당부분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음악평론가 강헌씨는 “산업화 단계로 접어든 연예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고 평가하며 “연예업계는 이를 계기로 종전의 한탕주의와 주먹구구식 운영에서 벗어나 과학적 분석과 치밀한 투자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음반기획자는 “성공 확률이 5%도 안돼 투자 리스크가 제조업의 몇 배에 달하는 연예업계의 특수성이 더 감안됐어야 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허엽기자 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