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진선생
29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이범진 선생 탄생 150주년 기념 추모학술회의에서 한국과 러시아 학자들은 이범진 부자(父子)가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을 상실한 뒤 일제의 귀국 지시를 거부하고 러시아에 남아 항일민족운동에 적극 참여한 사실에 대한 최근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해 발표했다.
특히 러시아 귀족 부인과 결혼해 프랑스와 러시아의 사관학교에서 공부한 이위종 선생이 볼셰비키 혁명 후 적군(赤軍) 장교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이위종 선생의 증외손녀인 율리야 피스쿨로바 모스크바대 한국학센터 연구원(32)은 “1919년 9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인들의 반일 시위에서 적군 장교였던 이위종 선생이 연설한 기록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는 “선생이 사회주의자여서가 아니라 항일운동에 대한 소비에트 정권의 지원을 받기 위해 적군에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피스쿨로바 연구원은 지난달 러시아 외교아카데미에서 ‘19세기 한-러 관계사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바 있다.
이위종선생수원대 박환(朴桓) 교수는 “최근 발굴한 일본 외무성 자료에 의하면 이위종 선생이 1921년 극동과 시베리아에서 이범윤(李範允) 선생 등과 함께 항일무장 투쟁을 주도했던 사실이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박 교수는 “이범진 선생도 사실상 러시아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극동지역 최초의 한인신문인 해조신문 창간에 기여하고 △차남 이위종을 극동에 보내 의병조직인 동의회 결성을 주도했으며 △1911년 자결하면서 상당수의 유산을 연해주의 한민학교 설립과 안중근 의사 유족 돕기 및 독립운동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동방학연구소의 보리스 박 교수는 “이범진 선생이 고종과 러시아 니콜라이2세 황제의 비밀연락을 맡는 등 한-러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니콜라이2세로부터 훈장을 받는 등 신임을 얻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선생은 러시아에서 망명생활을 하는 동안 러시아 정부의 배려로 지원금을 받았으며 이중 일부를 항일운동에 지원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러시아 동방학연구소와 외교아카데미, 상트페테르부르크대가 공동 주최한 이번 학술대회를 후원한 주러 한국대사관의 정태익(鄭泰翼) 대사는 “지난 세기 한반도를 휩쓴 파란의 역사 속에 이범진 열사도 잊혀지고 상트페테르부르크 교외의 공동묘지에 안장된 유해도 유실됐다”고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평생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바친 이 열사의 업적과 발자취를 되찾고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러시아 내에 남겨진 사료를 발굴하는 한편 당시의 공사관을 찾아 현판을 붙이고 공동묘지에 추모비를 세우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고 말했다.
정 대사는 “오늘의 한국이 대한제국일 수는 없으나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에 이어 오랜 대립과 갈등의 역사가 있었고 주위에는 여전히 강대국이 버티고 있는 등 구한말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해 현재 상황에 대한 인식과 해법을 찾을수 있을 것”이라고 이번 학술대회에 의미를 부여했다.
30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대한제국의 공사관이 있던 페스텔랴 거리에 현판이 부착되며 이범진 선생이 묻힌 것으로 확인된 북부공동묘지에 추모비가 제막된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상트페테르부르크〓윤양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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