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 당혹... 초조 - 박경모기자
【2000년 6월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된 후 처음으로 29일 실시된 장상(張裳) 국무총리 지명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당초 기대와는 달리 의원들의 중복 질문과 장 지명자의 면피성 답변 등으로 인해 다소 맥이 빠진 상태에서 진행됐다. 이날 청문회에서 의원들은 장 지명자의 주민등록위장전입, 장남 미국 국적취득 문제 등 각종 의혹과 정책관 및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검증을 실시했으나 준비기간 부족 등으로 ‘수박 겉핥기’에 그쳤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장 총리지명자 또한 주요 사안에 대해 “모른다”거나 “기억에 없다”는 말로 일관하는 등 철저한 검증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향후 청문회 제도의 보완문제가 논의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이날 청문회에서는 장 지명자의 위장전입과 부동산투기 의혹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 것이 그나마 성과였다는 평가다.】
◆부동산 투기 의혹
29일 인사청문회에서 집중 제기된 장상 국무총리지명자의 위장전입 의혹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79년 9월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무궁화아파트에 전세 입주한 장 지명자가 실제로는 대현동에 살면서도 80년 6월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 한신7차 아파트(35평형)로 주민등록을 옮겨 80년 5월 아파트를 실제로 분양 받은 사실이다.
장 지명자는 시어머니가 자신도 모르게 신반포아파트로 전입했다는 사실을 청문회 직전에야 알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은 6개월 뒤인 80년 12월 장 지명자가 신반포아파트를 팔아 2배 이상의 시세차익을 남긴 뒤 81년 1월 10일 주민등록을 다시 서대문구 대현동으로 옮겼다고 주장했다. 장 지명자는 81년 3월 전세로 살고 있던 대현동 아파트를 매입했다.
두 번째 의혹은 장 지명자가 85년 1월 서울 서초구 반포동 구반포아파트(42평형)로 주민등록을 옮겨 놓고도 역시 이사를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 지명자는 시누이의 남편 명의로 돼 있는 이 아파트로 주민등록을 옮겨놓았다가 2개월 남짓한 4월 5일 다시 대현동으로 주민등록을 옮겼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의원들은 장 지명자가 전세입주자에게 주어지는 속칭 ‘딱지’를 노렸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장 지명자는 이 지적에 대해서도 “전혀 기억도 나지 않고 모르는 일이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장 지명자가 87년 2월 서울 강서구(현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55평형)로 주민등록을 이전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장 지명자 부부가 실제로 입주를 한 것은 88년 3월로 주민등록을 이전한 후 1년이 지나서였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에 대해 ‘분양후 실거주 의무기간 1년’이라는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위장전입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장 지명자는 본인과 아들이 큰 수술을 했고 어머니가 작고하는 등 집안에 우환이 있어 이사가 늦어졌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장 지명자는 그 후 실제로 10년 가까이 이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투기 및 위장전입 의도는 없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장 지명자는 98년 11월 현재 살고 있는 서대문구 남가좌동 자택으로 이사했다.
장 지명자는 “주민등록을 옮긴 후 어디에서 투표를 했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는 “가능한 한 투표는 했지만 어디서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부부만 거주지 옮긴 이유 납득안돼” “사흘전에 알아…위장전입은 아니다”▼
▽심재철 의원(한나라당)
-장상 총리지명자는 79년 9월부터 87년 2월까지 아들 2명, 시모 등과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무궁화아파트에 거주하면서 △80년 6월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 한신7차아파트 △85년 서초구 반포동 구반포주공아파트 △87년 2월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아파트 등에 3차례 위장전입했다.
“이번에 (청문회) 준비를 하면서 잠원동과 반포에 (주민등록이) 갔던 것을 비로소 알게 됐으나 3년 전까지 시어머니가 재산관리를 총지휘했기 때문에 그 과정은 잘 모른다. 잠원동 신반포아파트는 아마 대현동 전세 아파트의 부도로 어디든 가야 할 상황이라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이주영 의원(한나라당)
-서대문구 대현동을 베이스캠프로 해서 수시로 강남이나 신개발지로 이주한 이유가 무엇이냐. 특히 85년 반포동으로 부부만 거주지를 옮겨 다른 세대의 동거인으로 들어간 것은 부동산 투기를 위한 것 아니냐.
“반포동 아파트에 3개월 동안 (주민등록이) 가 있었다는 부분은 정말 모르겠다.”
▽심 의원
-신반포아파트는 81년까지 주민등록이 돼 있는데 본인은 전혀 살지 않았다. 당시 부동산투기가 심해서 내려진 조치의 일환으로 1세대 1주택은 6개월 간 의무거주기간이 설정돼 있었다. 살지 않으면서 주민등록만 넣어둔 것은 위장전입 아니냐. 구반포주공아파트도 마찬가지다. 분양권 전매차익 때문이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 매입이 아니고 전세로 들어갔지만 세대주에게 1순위로 우선 분양되는 분양권, 소위 ‘딱지’를 노린 것 아니냐. 등기 전에 전매하면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으니까….
“위장전입이라는 말에 동의 못한다. 이사하려 했다.”
-동기야 어떻든 안 살면서 주소 옮기는 것이 위장전입이다. 목동 아파트를 매입해놓고 1년간 살지 않은 이유는 뭔가.
“집안에 우환이 있어서 1년간 이사를 들어갈 수 없었다. 분양받고 1년 동안 전세를 놓은 뒤에 들어갔다.”
▽박종희 의원(한나라당)
-‘우환’이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느냐.
“(한동안 망설이다가)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더욱이 목동은 당시 분양 미달이었다. 이사가 늦어졌을 뿐이지 위장은 아니다.”
-위장전입이 분명하다. 인정하라.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냐.
“…(위장전입 인정하지 않음).”
▽전용학 의원(민주당)
-주민등록 이전을 시부모가 한 일이라서 모른다고 해서는 해명이 안 된다. 주민등록 이전 때 시부모가 주민등록증을 달라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주민등록 이전 관련은 엊그제서야 알았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총리 지명사실 미리 귀띔 받았나”▼
◆李여사와 관계
▽전용학 의원(민주당)
-대통령 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로부터 총리 지명 사실을 사전에 귀띔 받았는가.
“근거 없는 이야기다. 이화여대 재학 중이던 50년대 말부터 YWCA 활동을 하면서 대학선배로 그 단체 총무였던 이 여사를 만났을 뿐으로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어떻게 친분 때문에 총리를 시키겠느냐.”
-현 정부 출범 이후 이화여대 출신이 여성 고위공직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는 이화여대 동문인 이희호 여사가 역할을 한 것 아니냐.
“정부 내에 이화여대 출신 고위직이 많은 것을 놓고 좋지 않은 눈치인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이화여대가 60년대까지 독점적으로 여성인력을 배출한 탓이다.”
▽박승국 의원(한나라당)
-50년대 말부터 이 여사를 알았으면 40년 지기인데 총리 지명 당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나 이 여사와의 친분을 굳이 숨긴 이유가 뭐냐.
“대통령 내외분과의 관계는 공적인 관계일 뿐 사적인 친분은 절대 없다.대통령과도 대학총장협의회 모임 때 봤을 정도다.”
▽이주영 의원(한나라당)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장 지명자가 이 여사와 임동원 국정원장 사이에서 손을 잡고 노래한 사진이 공개됐는데….
“남북정상회담 때 여성계 대표로 방북했다가 우연히 그런 자리에 서게 됐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정부 대응미숙… 마늘문제 초래”▼
◆국정운영-정책
장상(張裳) 총리지명자는 인사청문회에서 현 정부의 국정운영 및 각종 정책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총론 찬성, 일부 각론 수정 필요’라는 무난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박종희 의원(한나라당)
-현 정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패전 처리용 총리’란 지적이 있다.
“정치를 하지 않은 내가 (총리로) 선택된 것은 중립내각 성격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다. 대선을 중립적으로 치르는 데 중점을 두겠다. 21세기는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도 함께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는 시대이다. 월드컵 에너지가 지속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 임기말 기강해이도 없도록 하겠다.”
▽박승국 의원(한나라당)
-대학총장 시절 교수협의회를 못 만들게 했다는 지적과 함께 ‘총리가 되면 독재할 가능성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교수협의회를 못 만들게 한 적 없다. 독선적이라고 얘기하기보다는 원칙주의자라고 하는 게 맞다.”
▽조배숙 의원(민주당)
-대학총장 경험이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국정운영과 대학경영이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CEO 총장’ 경험은 조직 인사 관리 등 기본적 조직운영, 발전 목표의 설정과 전략 및 위기 관리 등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정세균 의원(민주당)
-현 정부의 국정에서 미흡하거나 개선해야 할 부문은….
“의약분업 초기에 준비 및 홍보 부족 등으로 국민의 불편을 초래했으며,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해서도 계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중국과의 마늘협상 논란도 정부가 보다 치밀하게 대응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공교육 정상화와 소득분배 개선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병석 의원(한나라당)
-현 정부의 인사정책은 ‘내 사람 돌려 쓰기’란 평가를 받고 있는데….
“능력과 실적 이외에도 지역적 균형 등 다양한 기준이 적용되다 보니 입장과 시각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능력과 경륜을 갖춘 분들이 기용돼 나름대로 국가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강운태 의원(민주당)
-지명자는 주식 투자를 하지 않고 있는데 현재 주식 투자자가 300만명이 넘는다. 주식시장 대책은….
“주가지수가 700선을 오락가락하는 것은 불안 요인이다. 그러나 거시경제 지표가 좋다. 미국 회계부정과 달러 하락, 소비심리 위축 등으로 동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주식시장에 쉽게 영향받는 체질로부터 벗어나야 하고 장기 주식 수요 대책도 있어야 한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對北화해정책 외에는 대안 없어”▼
◆대북관
의원들은 장상 총리지명자의 대북관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따졌다.
▽박승국 의원(한나라당)
-서해도발사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보나.
“북한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교전발생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늦게 열렸다.
“최초 대응에 있어 약간 미흡했다고 대통령도 인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대통령과 총리, 장관이 전사자 조문을 하지 않았는데….
“더할 나위 없는 애도를 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총리서리로서 행동을 자제하라는 얘기가 있었으나 (나는) 그 분들을 방문했다. 대통령이 일본에 간 것은 이해하나 그 이상의 얘기는 유보하겠다.”
-금강산 관광 사업 계속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금강산관광은 대북 화해협력의 큰 틀에서 이해해야 한다. 서해교전은 튼튼한 안보를 기초로 해야 하는데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 때 북한을 방문했는데, 6·25 미귀환 국군포로 송환과 납북자 생사확인 문제, 북한 인권, 북한어린이 기아문제 등을 논의했어야 하지 않느냐.
“당시 북측인사들과의 만남은 긴 시간이 아니었다. 북한에선 짜여진 각본을 갖고 왔고 나온 사람이 준비한 글을 읽었다. 그래서 급한대로 일본군 위안부 등 3가지 문제를 얘기했다.”
▽함승희 의원(민주당)
-서해교전 이후 금강산 관광을 잠시 중단하는 게 옳지 않았는가. 만약 서해교전 당시 총리였다면 어떻게 대응했을 것인가.
“가정(假定)에 대해선 얘기를 삼가고 있다. 이번에 너무 혼이 나서…. 국가는 안보와 국민의 생명, 재산을 보전하는 것이 제1의 의무이므로 평화공존을 위해 대북화해 정책을 추구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