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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 저편 85…밀양강 (1)

입력 | 2002-07-30 18:51:00


밀양강의 강물은 강바닥에 비치는 물고기 그림자의 움직임을 좇을 수 있을 정도로 맑다. 4월은 ‘물 반 고기 반’이란 말이 있듯이, 산란을 위해 거슬러 올라오는 은어들로 물이 거뭇거뭇하게 보인다. 수질 탓이라는 사람도 있고, 강바닥에 낀 이끼 탓이라는 사람도 있는데, 자신의 향기로 비린내를 지우는 밀양 은어는 회를 쳐 먹어도 맛이 있어, 옛 이조 시대부터 백 리나 떨어진 한양에서도 은어를 먹으러 찾아오는 미식가들이 많았다고 한다.

밀양 은어에는 ‘강의 왕자’라는 전설이 있다.

옛날 신라에 한 왕자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물놀이를 좋아한 왕자는 낚시를 배우고부 터는 하루도 빠짐없이 연못가에 모습을 나타냈다. 궁궐을 빠져 나와 어선을 타고 낚시를 하러 나가는 일도 종종 있어, 어부들은 그를 ‘강의 왕자’라 부르며 따랐다. 왕자의 마음은 강에서 강으로 흐르며 드넓어졌고, 급기야 부왕에게 ‘땅은 필요없습니다. 이 나라의 온 강을 저에게 주십시오’라고 청하기에 이르렀다. 부왕은 왕자의 청을 받아들여 온 신라의 강을 소유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왕자는 기뻐하며 신라의 도읍을 떠났고, 이 강에서 저 강으로 여행을 계속했다. 5월 중순, 낙동강의 지류가 고을과 고을 사이를 흐르는 물의 고장에 도착했다. 왕자가 백성들에게 은어 낚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 밀양 은어의 시작이라고 전해진다.

밀양강이 내려다보이는 산허리에 있는 영남루는 소실된 영남사(嶺南寺) 자리에 세워진 영빈관의 일부를 1884년에 재건한 것이라 알려지고 있다. 영남루는 건물 자체보다 밀양강과 종남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 해도 좋을만큼, 강을 등지고 계단을 올라가 영남루에 서서 강을 바라보았을 때의 아름다움이 이루 형용할 길 없다. 그 옛날 미리벌이라 불리웠던 평야의 저 먼 끝까지 내다보인다.

한 여자가 영남루 난간에 몸을 기대고 있다. 아침 안개가 자욱한 강 사이로 포플러가 언뜻언뜻 보이고, 진달래로 붉게 물든 종남산이 등줄기를 보이고 우뚝 서 있고, 햇빛에 거울처럼 반짝이는 수면이 나무를 비추고 있지만, 여자는 그런 풍경을 보고 있지 않았다. 온 몸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남자의 입술과 손가락의 감촉에 몸을 맡기고 있을 뿐이었다.

여자의 이름은 미령이라 했다. 여자의 집도 남자의 집도 밀양강 가에 있었다. 천천히 걸어도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남자는 배다리 건너에 있는 자기 집에서 영남루 바로 아래 삼나무 옆에 있는 여자의 집을 매일 드나들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