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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보니]김태철/˝러시아서 사업하려면 인맥을…˝

입력 | 2002-07-30 18:55:00


“러시아에서 사업하신다고요?”

한국과 러시아가 수교한 지 벌써 12년이 됐고 필자가 러시아에서 사업을 시작한 지도 10년이 넘지만 여전히 처음 만난 사람과 인사를 나눌 때마다 상대방은 놀라운 눈으로 다시 한번 필자를 쳐다보기 일쑤다.

그리고 꼭 따라붙는 질문이 있다. “러시아에서는 마피아를 끼지 않고는 사업이 안 된다면서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러시아의 마피아는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갱이 아니다. 러시아인들이 스스로 설명하는 마피아의 의미는 ‘부조리’와 동의어라고 보면 된다. 교통법규 위반 운전자가 단속경찰에게 뒷돈을 주어 무마하는 것이 생활화돼 있는 러시아에서는 교통경찰이 곧 마피아고 경찰청장이 이 마피아 조직의 두목쯤 되는 것이다.

사업은 분명 당사자간에 이익이 있어야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고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물론 부조리는 잘못된 것이지만 러시아에서는 보편화되어 있는 문화라면 우리는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부조리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제도보다는 인맥이라는 요소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은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바다. 러시아인들은 습관적으로 협상이 끝날 때마다 “다가바릴리스(약속했지)?”라고 다짐을 받는다. “너하고 나하고만의 일이니 다른 사람은 관여시키지 말자”는 뜻이다. 물론 방금 한 약속을 서로 잘 지키자고 다짐하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다.

러시아 경제와 사회는 역동성을 가지고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러시아 시장과 사회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은 30, 40대의 젊은이들이다. 필자의 사무실에는 199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처음 회사를 설립하고 시 정부로부터 받았던 사업자등록증이 걸려 있다. 거기에는 ‘블라디미르 푸틴’이라는 서명이 들어 있다. 당시 30대의 푸틴 대통령은 대외담당 부시장이었다. 당시 우리는 자주 만났고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그가 미래의 러시아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오늘 그는 크렘린궁의 주인이 됐고 당시 우리 회사에 근무하던 직원이 지금은 대통령비서실에서 일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한 것이 러시아다.

최근 공적자금 비리조사에서 러시아와의 국교 수립 당시 제공됐던 경협자금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부조리와 인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미하일 고르바초프라는 인맥을 잘 활용하여 어려웠던 국교 수립을 이루어내기는 했지만 경협자금 지원방식과 지원된 자금이 러시아에서 실제 분배되는 과정에 많은 부조리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게다가 보리스 옐친 정권을 거쳐 푸틴 정권으로 오면서 새로운 인맥이 창출되어 그동안 한국이 가지고 있는 인맥이 달라지게 되었고 신정권은 구정권의 부조리를 인정하지 않은 데에서 상환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러시아에서는 러시아식으로 사업을 해야 한다. 절대 투명의 사회로 발전하는 한국에서는 부조리라는 단어를 잊어버려야 하겠지만 러시아에서는 한국인 특유의 융통성을 발휘하여 정확한 인맥을 확보하고 계약을 체결하여 이익을 확보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김태철 러시아 ㈜IBC테크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