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컴퍼니 도쿄지사의 다나카 다케오미 컨설턴트. 정년퇴직이 아닌 조기은퇴가 희망사항이다. 그러나 보장된 노후, 안정지향이라는 일본적 가치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쿄〓조인직기자
다나카 다케오미(31). 다국적컨설팅사인 모니터컴퍼니 도쿄지사의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그가 졸업한 도쿄대 경제학부의 동창회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95년 졸업할 때만 해도 1종시험(우리의 행정고시에 해당)에 붙고 대장성 관료가 되는 게 최고였죠. NTT, 도쿄해상, 도쿄미쓰비시은행 같은 대기업이나 금융업체, 그것도 아니면 히타치나 도시바 같은 제조업체, 니혼게이자이신문사…. 이번에 동창들을 보니 공무원 생활을 접은 녀석들이 눈에 띄게 늘었어요. 친구들은 ‘기업의 접대가 예전보다 줄었다’고 농담을 건넸지만, 관료로서의 특별한 메리트가 많이 줄어든 게 이유라고 봐요.”
그는 ‘신인류(新人類)’라는 수식어를 숱하게 듣고 자랐다. ‘일벌레’인 아버지 세대와 달리 안정적인 경제성장 속에 세상을 즐기고 자신의 여가선용에도 투자를 많이 하며 살 것이라는 기대 섞인 추측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나카는 제2차 베이비붐 세대인데다 성장기에 맞은 버블경제, 회사원이 되고서는 장기불황까지 겹쳐 진학과 취업, 승진에서 항상 높은 경쟁을 뚫어야 했다.
그는 “정년퇴직, 풍족한 연금을 통한 안정된 노후 등은 전혀 보장할 수 없는 지경이 돼 버렸다. 30, 40대 현역에 있을 때 돈을 모아 혹시 있을지 모를 ‘조기 퇴직’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연봉은 800만엔(8000만원), 인센티브까지 합치면 1000만엔(1억원)에 육박해 동년배 최고수준이다. 제조업체, 관료, 은행, 보험사 등에 다니는 그의 친구들의 연봉은 400만∼700만엔(4000만∼7000만원)이다.
“신주쿠, 아자부, 세타가야, 에비스 등 도쿄도심에 20평짜리 좋은 맨션을 사려면 최소 5000만∼6000만엔(5억∼6억원)이 듭니다. 10년을 안 쓰고 꾸준히 모아도 만만치 않은 금액이죠.”
그는 70만엔 정도의 월급을 받아 10만엔 정도를 같이 살고 있는 부모에게 용돈으로 드리고, 40만엔 이상을 저축한다. 나머지 중에서도 여유자금을 조금씩 만들어 연간 200만엔 정도 벤처기업이나 부티크업종에 주식투자를 한다. 섣불리 덤볐다가 거품이 꺼지며 자기파산신고를 한 동료들을 봤기 때문에 토지나 부동산 투자는 하지 않는다. 차는 아버지가 몰다 준 3000㏄ 닛산 ‘글로리아’가 있지만 혼잡한 탓에 전철로 통근한다.
하루에 6000엔(6만원) 정도를 교통비와 식사비로 쓴다. 면도도 해야 하기 때문에 미장원이 아닌 이발소에 가서 2000엔(2만원)을 지출한다. ‘깔끔한 옷차림’을 위해 고가브랜드의 옷을 사 입을 여력은 없다.
31세인 지금도 결혼은 두렵다. 친구들도 대부분 미혼. “확실한 안정상태라고 믿지 못하기 때문이죠. 33세쯤이 적당할 듯 싶은데…. 어린 여성은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농담삼아 ‘바쯔 이찌’(‘X표 한 번’의 뜻으로 1번 이혼한 여성)가 더 안심이 된다는 친구들도 있어요.”
다나카는 부모님의 권유로 조만간 일본 최대규모인 ‘쓰바이’ 결혼정보센터에 등록해 이따금씩 맞선을 볼 작정이다. 도쿄대 동창들은 ‘너무 바쁘고 성실해서’ 도무지 자신에게 소개의 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는다.
‘영어’는 외국 클라이언트와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필요성을 절감하지만, 크게 불편한 점도 없다. 도쿄대에 응시하기 위해 이미 고교생 시절 각종 영어원서와 영문시사잡지를 정독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시코쿠 지방의 사립중고교를 나온 그는 “중등 6년과정을 4년 동안에 몰아서 배우고 나머지 2년은 대입을 위해 복습만 했기 때문에 과히 어렵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모니터컴퍼니에 들어갈 때도 영어면접시험은 보지 않았다. 다른 해외지점과 달리 사장이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200여명이 응시해 도쿄대 도쿄공대 와세다대 교토대 출신 등 4명만이 뽑혔다. 미국 경영학석사(MBA) 과정의 경우 자신을 포함한 외자기업 사원들은 많이 지원하려 하지만, 일본 기업은 연봉이나 직급에서 MBA라 해서 차이를 두지 않기 때문에 별로 인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다이이치(第一) 생명보험에 95년 입사했었다. 사교를 위해 골프를 했지만 필드에서 한 번 치려면 1만5000엔(약 15만원)이 들어 지금은 그만뒀다. 일찍 퇴근하면 클래식 음악이나 ‘이박사 메들리’ 등 해외 팝음악을 듣는 정도가 취미생활의 대부분이다.
다나카는 “‘1달러〓350엔’의 엔저시대였던 중고교 시절엔 오히려 성장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가득했다. 엔의 가치와 함께 국민소득도 올랐지만 지금의 30대라면 누구나 위기감과 불안감이 앞설 것”이라고 말했다.
“‘신인류’는 얼핏 나이스해 보이며, 통일성이 없고 튀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이지만, 어느 세대 보다 더 빨리 정해진 사회의 틀에 적응해 안정을 바라는 것 같다.”
●일본의 ‘신인류’란
일본에서는 1926∼1934년에 태어난 세대를 ‘기아세대’로 부른다. 이들은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통해 전쟁, 패배, 기아를 경험했다. 나머지를 포괄해 ‘신인류’라 부르기도 하고 단지 혁신적 사고를 지닌 사람을 신인류라 통칭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전후세대이자 1차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세대인 1970년대 전후 태생을 ‘신인류(新人類)’라 좁혀 부른다. 현재의 10, 20대는 ‘초신인류’로 기존의 신인류와 구별해 쓰기도 한다. 한국의 신세대, 미국에서 유래된 X세대, 프랑스에서 제기된 ‘글로벌 X세대’와 공통분모가 있지만 경제불황과 맞물려 일본인 특유의 안정지향주의를 오히려 공고화하고 있는 점도 일본 신인류의 정체성 중 하나다.
일본 광고회사 ‘덴츠’는 일본의 신인류를 △경제적 물질적 풍요와 혜택을 누린 세대라 ‘성장’을 당연시해 성장하지 못하면 불안해 하고 △조직사회에서 동질성보다는 차별화를 추구하며 △부자 간 평등인식을 갖고 있어 가족을 ‘서클 조직’으로 인지한다고 분석했다.한국에서는 민주화투쟁세대인 386세대와 구별해 일반적으로 1970년대 이후 태생을 신세대라 부른다. 미국의 소설가 더글러스 커플랜드는 대략 1965년생 이후를 X세대라 칭하며 베이비 부머(Baby Boomer)와 다른 베이비 버스터(Baby Buster)라 일컫기도 했다.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글로벌 X세대’란 다국적 자본과 전파의 합작품으로 음악과 스포츠라는 국제 언어를 공유하며 같은 의상과 가전제품, 컴퓨터 마인드로 무장하고 기존의 정치 경제 문화 국경을 뛰어넘는다고 분석했다.
도쿄〓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