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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기자의 현장칼럼]아쿠아리움의 ´상어 납량특집´

입력 | 2002-08-01 16:19:00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아쿠아리움의 무법자 샌드 타이거 상어 한 마리가 수족관 속을 유영하고 있다. 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지난달 10일 밤 9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아쿠아리움. 관람객들은 모두 돌아가고 수족관의 불이 하나 둘 꺼졌다. 상어들이 우글거리는 초대형 수족관 오션 탱크(Ocean Tank)의 불도 꺼졌다. 인공적으로 달빛 효과를 내기 위해 켜진 작은 전등 몇 개만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불안한 빛을 내고 있었다.》

밤 10시. 오후 6시 이후 혼자 남았던 당직 사육사마저 퇴근하고 나자 이곳은 심해와 같은 적막 속에 빠져들었다. 지금부터는 수족관의 무법자 샌드 타이거 상어(Sand Tiger Shark)의 세상이다. 사납게 생긴 이빨 때문에 래기드 투스 상어(Ragged Tooth Shark)라고도 불리는 이 상어들은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아주 천천히 유영을 계속한다. 자신들이 정해 놓은 가상의 큰 원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정확히 유영하는 모습은 그 느린 속도로 인해 오히려 주위를 불안하게 만든다.

조용한 어둠 속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다만 그 다음날 잠수복을 입고 수족관에 청소하러 들어간 사육사가 물이 빠져나가는 곳에서 죽은 채 태어난 까치상어 새끼 2마리를 발견했다. 수족관은 한쪽으로는 물을 집어넣고 다른 한쪽으로는 물을 빼는 방식으로 하루 1차례씩 물을 완전히 바꾸도록 돼 있다 보니 배출구 근처에 온갖 잡다한 것이 모인다. 죽은 새끼들도 물의 흐름을 따라 이곳으로 흘러왔을 것이다. 뱃속에서 수정되는 난태생(卵胎生)인 까치상어는 몇 차례에 걸쳐 50마리 정도의 ‘새끼 알’을 낳는다. 그렇다면 나머지 산 새끼들은 다 어떻게 된 것일까.

수족관에서 상어가 새끼를 낳는 일은 거의 없다. 만약 사육사들이 상어가 임신한 사실을 발견했다면 당연히 격리시켰을 것이지만 수족관 내에서 암컷과 수컷이 교미를 해서 임신하는 일은 거의 없다. 수족관은 숨을 곳도 별로 없어 은밀한 장소를 요구하는 교미가 일어나기 어려운 곳이다. 그러나 사육사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은 작년에 새로 들여온 까치상어가 이미 임신이 된 상태였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 다음날인 12일 오후 7시반. 관람객들이 채 빠져나가지 않은 수족관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3m 길이의 샌드 타이거 상어 한 마리가 까치상어를 물었고 피냄새가 나자 즉각 다른 상어들이 함께 달려들어 물고 흔들어 까치상어가 두 동강이 나고 만 것이다. 관람객들은 비명을 지르거나 자녀의 눈을 가리는 등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당직 근무중이던 사육사가 뛰어나왔지만 두 동강난 까치상어가 다른 상어들의 밥이 되어 먹히는 장면을 관람객들과 함께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도 수족관에서 상어가 상어를 잡아먹는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처럼 2m 길이의 덩치 큰 상어가 잡아먹히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다.

무엇이 갑자기 샌드 타이거 상어를 흥분시킨 것일까. 수족관을 책임지고 있는 사육사 오태엽씨는 “죽은 새끼 상어가 전날 발견된 것으로 미뤄 두 동강이 난 까치상어는 바로 죽은 새끼 상어의 어미이고, 이 어미 상어가 뱃속에 남아 있는 분비물을 쏟아내는 과정에서 후각이 예민한 샌드 타이거 상어를 자극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살아서 태어난 다른 새끼 상어들도 몇 마리인지 알 수 없지만 같은 이유로 샌드 타이거 상어의 먹이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샌드 타이거 상어는 시각은 거의 발달하지 않았지만 후각과 청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예민하다. 수족관 안에는 샌드 타이거 상어와 함께 ‘식인 상어’로 분류되는 브라운 상어(Brown Shark)도 살고 있다. 샌드 타이거 상어에 비해 시각이 발달한 브라운 상어가 밝은 수면 가까이에서 활동하기 좋아하는 데 반해 샌드 타이거 상어는 어두운 바닥에서 활동하기를 좋아한다. 브라운 상어는 날렵한 지느러미로 수면에 은빛 물결을 일으키며 유영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샌드 타이거 상어는 사육사들이 주는 먹이를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수면으로 떠오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바닥에서 노는 상어일수록 후각과 청각이 발달돼 있다.

수족관에서는 밤에 많은 사건이 일어난다. 올 3월에는 사육사들이 수족관을 청소하다가 손바닥만한 고기 비늘이 바닥에 잔뜩 깔린 것을 발견했다. 나폴레옹 피시(Napoleon Fish)의 비늘이었다. 무게가 40㎏이나 나가던 이 큰 고기가 하룻밤 사이 상어의 밥이 돼 사라지고 비늘만 남은 것이다.

상어가 배가 고파서 이런 고기들을 잡아먹는 것은 아니다. 수족관의 상어에게는 먹이를 사냥해야 하는 야생의 상어와는 달리 하루 한 차례씩 대구 전어 오징어 등의 신선한 먹이가 충분히 공급된다. 게다가 수족관 고기들은 쉽게 잡아먹힐 만큼 만만한 고기들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를 과도히 낭비하면서까지 다른 고기를 잡아먹지는 않는 것이 이곳 상어의 생리다.

샌드 타이거 상어는 수족관에 살게 된 이후 관성이 된 일정한 속도와 방향으로 헤엄친다. 또 늘 맡는 주변의 냄새와 소리가 있다. 그런데 무언가 자신이 나아가는 속도에 맞춰 제 때 비키지 않거나 낯선 냄새와 소리가 끼어들면 갑자기 난폭해진다.

샌드 타이거 상어는 작년 말부터 올 초에 걸쳐 7마리의 상어들을 잇달아 공격했다. 희생된 상어는 블랙 팁 리프 상어(Black Tip Reef Shark), 그레이 리프상어(GreyReefShark), 블랙 노즈 상어(Black Nose Shark)와 같은 덩치가 작은 상어들이었다. 당시에도 그레이 리프 상어 한 마리가 샌드 타이거 상어에게 잡아 먹히는 장면이 수족관 내 폐쇄회로(CCTV)에 잡혀 충격을 줬다.

수족관 개장(2000년 4월) 이후 1년 반 가까이 상어가 상어를 잡아먹는 일은 한번도 없었는데 갑자기 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사육사들은 고민에 빠졌다. 사육사들은 처음에는 샌드 타이거 상어가 산란기를 맞아 신경이 유난히 날카로워진 것이 아닌가 추측했다. 그래서 샌드 타이거 상어의 임신 여부를 초음파로 조사해 보기도 했으나 결국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사육사들은 작은 상어들은 수족관에서 꺼내 격리시킴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오씨는 “개장 때 남아공 호주 미국 등 각지의 바다에서 잡혀온 상어들은 좁은 수족관에서 영역다툼을 벌여 남아공산 샌드 타이거 상어는 수족관의 바닥 부분을, 미국산 브라운 상어는 수족관의 수면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균형을 이뤘다”며 “영역을 차지하지 못한 작은 상어들이 수족관을 위 아래로 거침없이 오르내리면서 샌드 타이거 상어의 유영 코스를 자주 방해하자 공격을 받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 1년 반 동안은 별일이 없었던 것을 보면 그래도 작은 상어들을 위한 여유공간이 남아 있었나 보다. 그러나 그 사이 샌드 타이거 상어도 작은 상어들도 몸집이 커졌다. 인간에게는 10㎝ 안팎의 작은 차이에 불과하지만 민감한 샌드 타이거 상어에게는 큰 차이였는지 모른다. 공간의 균형이 깨진 것이다.

작은 상어들을 빼내 큰 상어의 활동공간을 넓힌 뒤로는 상어가 상어를 공격하는 일은 한동안 없어 사육사들을 안심시켰다. 작년 새로 들여온 까치상어는 수족관 구석에 틀어 박혀 가만히 있는 시간이 많아 샌드 타이거 상어와 충돌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덩치도 블랙 팁 리프 상어 등과 달리 컸다. 그런데 이번에는 까치상어까지 당하고 만 것이다. 날이 갈수록 거침없어지는 샌드 타이거 상어의 흉포한 행동이 다시 한번 코엑스 아쿠아리움을 긴장시키고 있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