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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속의 에로티시즘]무제레스&콤파니아-게이페스티벌 광고

입력 | 2002-08-01 16:20:00

성적 욕망을 해부한 심리학자 프로이트를 소재로 한 아르헨티나 여성잡지 무제레스 & 콤파니아 광고. 게이도 여성처럼 해방돼 프로이트의 머릿속을 무용수처럼 뛰쳐나갈 날이 올까?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고 아직 마음이 조직화되지 못한 어린 아이들은 욕망이 명령하는 대로 움직인다. 입에 넣고 싶은 것, 손 대보고 싶은 것은 모두 해내야 직성이 풀린다. 다시 말해 욕망충족을 위한 쾌락원칙에 의해 움직인다. 쾌락원칙에 의해 움직이는 이러한 심적 상태를 프로이트는 독일어로 ‘그것(Es)’이라 불렀다.

‘그것’은 ‘나’라는 1인칭 주체의 자아(Ego)가 생성되면서 통제되기 시작하지만 최상의 검열기관인 초자아(Superego)로도 감당이 힘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날뛰는 원초적 욕망이기에 프로이트는 비인칭을 사용했던 것 같다. 그 비인칭의 ‘그것’엔 선악의 개념도 논리적 사고도 존재하지 않는다.

비인칭 ‘그것’에 해당하는 라틴어가 바로 이드(Id)다. 이드는 성적충동인 리비도의 저장소다. 어린 아이가 입에 넣고 손으로 만지고 싶어하는 욕망은 바로 섹스 욕망의 원형질이다. 마음 속 깊숙이 무의식으로 존재하고 있는 리비도를 성적 욕망 일변도로 풀어낸 지크문트 프로이트. 그의 이론을 하나의 그림으로 압축한 예가 있다. 프로이트의 머리 부분을 여자의 나체로 장식한 그 유명한 그림은 이드의 형상을 메타포로 드러낸 걸작이다. “남자의 마음 속에 뭐가 들어 있나”라는 문구가 붙은 이 그림은 오로지 욕구충족의 쾌락원칙에만 충실한 이드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그 원본을 패러디한 두 편의 광고를 보자. 첫 번째는 여성잡지 무제레스 & 콤파니아 광고다. 아르헨티나의 아길라 & 바세티가 제작한 이 작품에선 프로이트의 머리 부분을 형상화하고 있던 나체의 여자가 잡지를 들고 뛰쳐 나온다. “남성의 성적욕망 대상으로 비쳐지던 여자들이여, 떨치고 나서라”는 페미니스트의 구호를 보는 듯하다. 종속되지 말고 깨어 있으려면 이 잡지를 읽으라는 그림 메시지인 셈이다. 두 번째 광고는 노르웨이의 베이츠 캠프가 제작한 게이 페스티벌 행사를 알리는 광고다. 이번엔 프로이트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던 나체의 여자가 나체의 남자로 바뀌어 있다. 성적 대상의 성만 바뀌었을 뿐 꿈틀대는 성적 욕망이 머릿속에 그득하기는 마찬가지다.

노르웨이의 게이 페스티벌 광고.

성적욕망의 심리학적 접근의 틀을 제시한 프로이트는 이렇게 다양하게 해석되며 변주된다. 페미니스트의 관점도 동성애의 관점도 어떤 이유로든 그의 사상에 뿌리를 대고 있다는 사실을 상업적 이미지로 보여 준다. 그를 통하지 않으면 인간사의 기본적인 욕구 시스템을 복구할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의식의 통제가 쉽지 않은 제3의 ‘그것’의 영역이 존재함을, 그리고 그것의 중요성을 프로이트는 간파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이성 중심 일변도의 사상의 근원을 뒤엎게 된 것도 프로이트가 마음 속 그림에 대한 윤곽을 잡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프로이트는 계속해서 재해석되고 패러디될 것이다. 이드는 물불 안 가리고 치솟는 욕망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이드는 무의식의 세계다. 하지만 그것이 의식의 스크린을 뚫고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면 너무나 이성적이다. 그것의 앞뒤 일치됨에 누구도 시비할 수 없다. 프로이트가 말했듯 ‘심리학은 한마디로 말해 가장 냉엄한 리얼리즘’이기 때문이다.

김홍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