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말 박정희 대통령은 이효상 국회의장을 유임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여당인 공화당의 김종필계는 정구영 의원을 밀어 1차 투표에서 정 의원이 1위를 했다. 박 대통령은 격노했다. ‘반란’의 주동자들은 당직 박탈, 정권(停權), 경고처분 등의 징계를 받았다. 71년 9월 야당인 신민당은 오치성 내무부장관 해임안을 국회에 냈다. 이번엔 공화당 내 반(反) JP계의 가세로 해임안이 가결됐다. ‘10·2 항명’ 사태였다. 그 결과 23명의 의원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2명은 강압에 의해 의원직을 내놓았다.
▷나쁜 버릇은 오래 간다. 요즘도 국회에서 쟁점안건에 대한 표결이 있을 때마다 각 정당은 이른바 ‘반란표’ 단속과 색출로 법석을 떤다. 99년 4월 한나라당 서상목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자 정치권엔 출처불명의 ‘반란자 리스트’가 나돌았다. 자민련 의원 12명의 명단이 포함된 것이었다.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은 지난해 말 건강보험 재정분리 당론과 달리 재정통합을 주장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직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올해 2월 국회법에 ‘의원들은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투표한다’는 자유투표(크로스보팅) 조항이 신설됐지만 정치권의 행태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달 초에 실시된 16대 국회 후반기 의장단 선거부터가 그랬다. 각 당은 자유투표에 합의를 하고도 내정자를 정해 사실상 당론투표를 했다. 국회법에 명문화돼 있는 자유투표를 위해 합의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합의를 한 것부터가 ‘꼼수’였다. 민주당 송영진 의원은 자유투표 관철을 위해 의원총회에 불참한 조순형 의원에게 “××놈” “개××”라고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그제 장상씨에 대한 총리임명동의안이 부결된 직후에도 각 당은 반란표와 이탈표 분석에 분주했다. 서로 엇갈린 분석을 내놓고 상대 당을 향해 삿대질까지 해댔다.
▷자유투표를 했다고 하면서 반란표나 이탈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누구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뭘 이탈했다는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의 반란 대상은 국민뿐이라는 점에서 민의(民意)를 외면한 의원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해야 맞는데 이들이 되레 반란자를 찾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뻔뻔스러울 정도로 무신경하다. 온갖 생색을 내면서 도입한 자유투표제도의 단순한 의미조차 불과 몇 달 만에 깡그리 잊어먹은 듯해서 하는 말이다. 우리 정치의 천박성은 바로 제도와 의식의 괴리에 있음을 거듭 절감한다.
임채청 논설위원 ccl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