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파월 미국 국무부 장관과 백남순 북한 외무상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무장관 회담 회동은 긍정적인 신호이지만 한편으론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대북정책의 또 다른 장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 후속 대화가 열리겠지만 전도는 험하고, 실패할 가능성도 많다.
부시 행정부가 취해온 대북정책은 예측 불가능한 것이었다. 부시 행정부의 관료들은 분열돼 있다. 보수파들은 포용엔 거의 관심이 없다. 이들이 숨기고 있는 목표는 북한 정권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는 무력 사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보수파의 주요 이론가인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북한의 정권 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현 단계에선 군사력이 경쟁력 있는 옵션이 아님을 시사한 것이다.
▼美 특사파견 평화구축 전기로▼
온건파도 포용엔 회의적이지만 그래도 이들은 대북 강경책을 지지하지 않는 한국 일본의 견해 등 실제적 현안에 관심을 갖고 있다. 온건파는 현 상황에선 북한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협상이 북한의 대량살상 및 재래식 무기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나쁘지 않은 옵션이라고 믿고 있다.
이제 머지 않아 서해교전 후 철회됐던 미 특사의 방북 시기가 재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핵심적인 관건은 대북 대화를 보수파가 북한의 정권 교체를 진전시키는 데 이용할 것인지, 아니면 온건파가 북한의 위협에 실질적인 제약을 가하는 데 이용할 것인지 여부이다.
유력한 시나리오는 윌리엄 페리 전 국방부 장관이 99년 북한을 방문했을 때의 모델이다. 즉 미 특사는 협상과 대결을 북한이 택할 수 있는 2개의 길로 제시할 것이다. 특사의 설명은 북한의 인권탄압 문제 등 부시 행정부의 수사(修辭)로 가득 차겠지만 후속 대화를 위한 문은 열어 놓을 것이다.
보수파가 우위를 점할 경우엔 입장이 보다 강경해질 수 있다. 예컨대 미국은 대화 재개 전에 북한이 안보 및 다른 현안에 관해 지켜야 할 전제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런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긴 하지만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인 92년 1월 미국이 북한과 첫 고위급 접촉을 가졌을 때 미국은 이 같은 입장을 취했었다.
어느 길을 택하든 앞날은 험난할 것이다. 북한에 부시 행정부는 위험이자 기회이다. 위험은 부시 행정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제거라는 숨은 목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기회는 부시 행정부가 강경한 수사와는 달리 거래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진정한 협상의 길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의제는 어렵고, 상호불신은 대단할 것이다. 게다가 대화를 시작하는 것과 대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북한을 다루는 데 경험이 많은 미 관료들은 이제 거의 없다. 예전에 로버트 갈루치 대사 같은 협상대표는 장관급 관리들을 정기적으로 만나 대북정책 형성을 도왔다. 그러나 잭 프리처드 대북 교섭대사와 같은 부시 행정부의 협상팀은 연조가 훨씬 낮다.
힘든 협상을 전개해 나가는 것은 권장할 일이지만 평양의 정권 교체와 같은 무분별한 정치적 망상을 추구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이는 북한이 제기하는 심각한 안보 위협에 대한 거래를 차단하고 미국의 지도력에 대한 동맹국들의 신뢰를 저해할 뿐이다.
미 특사의 방북이 장차 북-미 관계와 한반도 평화의 기조를 닦는 데 결정적 전기임을 부시 행정부가 이해하기를 바란다.
조엘 위트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