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후 7시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두 여중생에 대한 추모제가 열린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
시위대와 경찰이 치열한 몸싸움을 하고 있는 ‘전선(戰線)’ 한쪽에 감색 조끼를 입은 남자 5명이 사진을 찍고 수첩에 현장 상황을 열심히 기록하고 있었다.
이들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인권이 침해당하는 사례가 있는지 점검하러 온 국가인권위원회 ‘인권현장확인반’ 소속 인권침해조사관들. ‘인권지킴이’를 자처하는 조사관들은 이날행사에서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 따라 경찰의 과잉 진압 사례를 채증하기 위해 현장에 출동했다.
월드컵 축구 기간에 경찰이 집회를 지나치게 제한하자 한시적으로 운영됐던 인권현장확인반은 월드컵이 끝난 후 활동을 잠시 중단했다. 그러나 최근 여중생 사망사고 관련 집회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부상자가 속출하자 이날 다시 현장으로 나온 것.
이들은 시위 현장에서 단순히 인권침해 사례만 채증하는 게 아니라 물리적 충돌을 사전 예방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최준석 인권침해조사관(33)은 “인권 침해 현장을 목격하기 위해서는 현장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경찰과 시위대의 중간에 끼여 다치기도 하지만 우리가 현장에 나와 있다는 사실을 알면 양측 모두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