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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북스]손끝으로 만나는 중국-일본 ´천상의 두 나라´

입력 | 2002-08-02 17:38:00

[동아일보 자료사진]


◇천상의 두 나라/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정영문 옮김/344쪽 9800원 예담

길이 끝나자 비로소 여행이 시작된다.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횡단한 여행자여,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사막인가, 시장인가.

여행을 삶으로 사는 나에게는 몇 권의 여행에 관한 경전(經典)이 있다. 경전은 언제나 내 손 가까이 내 서가의 심장에 꽂혀 있다. 김윤식의 ‘환각을 찾아서’는 십년 넘게 그 자리에 있어 왔고, 박완서의 ‘모독’과 김화영의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城)’은 근래에 만났다.

그리고 방금 새로운 경전 하나가 내 삶으로 들어왔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천상의 두 나라’. 크레타섬 출신의 그리스인의 동양 편력인 이 경전을 손끝으로 만지는 순간 나는 어쩌면 죽을 때까지 이 매혹적인 순례기로 행복할 것이라는 예감을 했다.

책을 펼치는 순간 맞딱트린 카잔차키스의 고백적인 육성 때문이었다.

‘나는 촉감(觸感)의 신이 나의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알게 된 모든 나라들을 촉감으로 느끼게 되었다.’

촉감, 희랍인의 자유로운 본령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돌며 ‘영혼의 자서전’을 집필했던 카잔차키스가 도달한 경지다. 수많은 여행지를 거친 그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기 위해 눈을 감을 때면 마치 연인이 곁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전율하는 천 상의 두 나라, 중국과 일본. 두 나라 사이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질투로 금세 피가 뜨거워지지만, 그러나 질투는 나의 힘, 질투를 속으로 다스리는 일 또한 여행의 또다른 시작이 아닌가.

완벽한 여행자는 항상 자신이 여행하는 나라를 창조한다. 카잔차키스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두 나라를 전혀 다른 촉감으로 재창조한다. 그는, 중국은 진흙의 무거움을 나비의 가벼움으로 일순 환치시킬 수 있는 힘, 거대한 영혼성으로, 일본은 오직 두 단어, 사쿠라(벚꽃)와 고코로(마음·心)만으로 신비와 관능성을 체험하고 자기화한다.

놀라운 것은 서른 여덟 개의 길목 전편에 흐르는 그 특유의 관조와 객관적 균형 감각이다. 그 때문에 이 책은 그가 이들 두 나라의 땅을 밟은 시기가 1930년대 중반, 그러니까 산업과 혁명과 전쟁과 삶이 국가를 막론하고 공포와 불안정이 극에 달했던 시절인데도 유럽인의 동양 인상기에 그치지 않는, 상대적 본질을 꿰뚫는 문명서이자 오늘의 두 나라를 예감케하는 예언서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에게해의 카잔차키스, 그는 유럽인이면서 아시아인이고, 시인이면서 철학자이고, 자연인이면서 문명인인 자신만의 천혜의 정체성을 이 방랑기에서 유감없이 발휘한다. 선조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그는 영혼이란 온 감각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이라 믿었고 그에게 천상은 오감이 풀을 뜯을 수 있는 새로운 목초지였다.

황혼의 베이징, 버려진 왕국 쯔진청(紫金城), 저주받은 도시 상하이, 일본의 심장 나라, 기계와 숫자에 찌든 오사카, 신기루와 같은 교토, 그리고 무수히 많은 대륙의 거지들과 항구의 여자들과 슬픈 게이샤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다. 촉감에 의지하지 않고서 어찌 벚꽃처럼 날리는 이들을 영혼에 새길 것인가.

여행이 끝나자 길이 시작된다. 김윤식은 여행을 문학, 아니 작가의 혼을 찾아나서는 환각이라 했다. 김화영은 여행을 내 삶이 남의 삶과 만나는 감촉, 공명(共鳴)이라고 했다. 카잔차키스는 여행을 미지의 새를 만나러 가는 사냥이라고 했다. 이제는 누구도 아닌 내가 떠날 차례다, 아니 당신이! 그 길에 축복이 있기를!

함정임 소설가·etrlajiham@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