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선수재와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金弘業) 전 아태재단 부이사장이 측근인 김성환(金盛煥)씨 등과 함께 2일 처음으로 법정에 섰다.
홍업씨는 위축된 모습이었던 동생 홍걸(弘傑)씨와 달리 변호사에게 눈 인사를 건네고 법정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등 비교적 차분한 모습이었다. 복장도 정장 차림이 아닌 일반 피고인처럼 하늘색 반소매 수의를 입었다.
서울지법 형사합의22부(김상균·金庠均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홍업씨는 검찰 측 질문에 대해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몰랐다”며 정확한 답변을 피했다. 돈을 받은 혐의 중 상당부분과 대가성도 부인했다.
홍업씨는 “김성환씨의 소개로 성원건설 전윤수 회장을 만나 친하게 어울린 것은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사업내용에 대해 얘기하거나 이형택(李亨澤) 당시 예금보험공사 전무에게 화의인가 청탁 등을 한 적은 없다”고 진술했다.
홍업씨는 현대, 삼성 등 대기업에서 받은 돈 22억원에 대해서도 “편의를 위해서 베란다에 돈을 보관했을 뿐 세금을 안 내려고 일부러 숨긴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홍업씨는 “99년 10월 현대로부터 처음 받은 10억원은 고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준 것으로 미뤄 짐작했고 이후 매달 5000만원씩을 받은 6억원은 정 회장의 개인돈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덧붙였다.
검찰 주 신문을 맡은 김진태(金鎭太) 대검 중수2과장은 홍업씨가 매번 답변을 얼버무리며 김성환씨와 유진걸(柳進杰), 이거성(李巨聖)씨 등 이른바 ‘측근 3인방’에게 책임을 떠넘기자 “솔직하게 말하라”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한편 홍업씨에 앞서 진행된 ‘측근 3인방’에 대한 공판에서는 세 사람이 받은 돈의 액수 등에 대해 엇갈린 진술을 하며 서로에게 정확한 진술을 미루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거성씨는 “2000년 이재관(李在寬) 당시 새한그룹 부회장의 부탁을 받고 고향 선배를 통해 김영재(金暎宰) 당시 금감원 부원장보에게 회사의 회생 가능성을 물어봤으며 ‘별 문제없어 잘하면 회사를 되찾을 수 있겠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다음 공판은 23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