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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스님의 산사이야기⑤]고참행자 지은 밥 기름 "좔좔"

입력 | 2002-08-02 18:51:00

수행자가 되기위해 입산한 한 행자가 공양간으로 향하고 있다. 행자 생활은 인내와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이 요구되는 자기 점검의 시간이다 [사진제공=현진스님]


‘스님 후보생’인 행자들의 24시는 매우 바쁘고 힘들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잠자리에 눕는 밤 9시까지 행자들의 하루는 절 집의 법도와 질서를 익히는 과정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하루의 절반 이상을 밥 짓고 국을 끊이는 일로 보낸다. 그러니까 행자들에게는 공양간이 수행 현장이나 마찬가지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공양을 준비하는 시간은 새벽 4시 무렵이다. 행자들은 소임별로 나눠 아침 공양을 준비하는데 뭐니뭐니 해도 밥을 짓는 공양주 소임이 으뜸이다. 공양주는 밥을 질게 하거나 찰지게 해서는 안되고 늘 밥 기름이 좔좔 흐르게 해야 한다. 그래서 공양주는 고참 행자가 맡아서 밥 짓는 솜씨를 발휘해야 실수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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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씨 좋은 공양주는 그 기술이 신기에 가까울 정도다. 하루 세 끼 밥의 상태가 일정하며 심지어는 누룽지 두께까지 매일 정확하게 만들어낸다. 물과 불을 잘 조절해야 맛 나는 밥을 지을 수 있다. 그래서 고참 행자는 그 비결을 다음 공양주 소임을 맡은 이에게 전수하기 위해 3개월 정도를 교육을 시킨다. 이런 전통 때문에 해인사의 밥맛은 공양주가 바뀌더라도 바뀌지 않는다.

그 다음의 일은 국을 끊이는 갱두(羹頭) 소임과 반찬을 만드는 채공(菜供) 소임으로 나뉘어진다. 국과 찌개는 하루 세끼가 달라야 한다. 절에서는 별다른 조미료가 없으므로 된장을 풀어 맛을 내는 것이 전부이다. 그렇지만 음식 맛은 손끝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손맛이 좋은 행자의 손을 거치면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는 구수한 된장국이 된다.

행자실에 전해 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 하나가 있다.

추운 겨울에 어느 행자가 국을 끊이다가 고기를 넣어 버린 일이 있었다. 그 고기는 다름 아닌 ‘쥐’였다고 한다. 시래기 국을 끊이기 위해 국거리를 준비해 두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전날 밤에 쥐 한 마리가 그 시래기 통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것도 모르고 행자는 어두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솥에 물을 붓고 시래기를 넣고 국을 끓여버린 것이다. 행자가 국을 푸기 전에 국자로 시래기를 휘저으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행자는 쥐를 몰래 건져내고 국을 스님들께 올렸다고 한다. 혼이 날 줄 알았던 행자에게 아침 공양을 끝낸 원주(살림을 도맡아 하는 소임) 스님이 이렇게 말했다.

“행자님, 오늘 국 맛은 참 좋았습니다!”

“….”

모르고 먹으면 다 약이 된다는 말이 맞나 보다.

어쨌건 행자의 하루는 공양 준비로 인해 행자의 하루는 정신 없이 지나간다. 스님들의 공부 뒷바라지하는 재미로 힘든 줄 모르고 일하는 시기가 바로 행자 시절이다. 그야말로 신심과 원력이 충만한 그런 시기인 것이다. 그래서 ‘행자 시절에 지은 복으로 평생 중노릇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러한 행자시절은 6개월이 지나면 끝이 난다. 그렇지만 6개월 동안 행자수업의 과정을 통과하는 이들이 드물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출가를 포기하고 도중에 하산하는 행자들이 많다는 뜻이다.

출가는 논리 이전에 행동이다. 일상적인 삶에서 본다면 일탈과 파격이다. 그러므로 출가하는 일을 여행하듯 계획을 세운다면 실패할 확률이 아주 높다. 출가할 시기는 먼 훗날이 아닌 ‘바로, 지금’이어야 한다. 완전이란 이미 이뤄진 상태가 아니라 시시각각 창조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출가의 길을 떠나는 그 순간이 바로 세속의 미련에 대한 완전한 정리다. 머뭇머뭇하면 그물처럼 촘촘한 세속의 인정과 인연에 걸리고 만다.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출가의 약속이다.

해인사 포교국장 budda122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