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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헤드윅´ 여가수로 성공한 소년의 감동스토리

입력 | 2002-08-05 17:24:00

트랜스젠더 로커의 성 정체성 문제를 그린 록뮤지컬 영화 '헤드윅' [사진제공=씨네월드]


영화 ‘헤드윅’은 루 리드, 이기 팝, 데이빗 보위 등 세상의 모든 위대한 록 뮤지션들과 주인공 헤드윅처럼 성 정체성으로 인해 고통받는 성적 소수자들에게 바치는 찬가다.

헤드윅으로 출연한 존 카메론 미첼(39)이 시나리오 연출 주연까지 맡은 이 작품은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던 1961년 8월 13일 옛 동독에서 태어난 ‘소년’ 한젤이 어떻게 ‘여성’ 헤드윅이 되었으며, 어떻게 지적 완성도가 뛰어난 가수로 성장해 가는지를 그렸다.

이 과정은 매우 도발적이면서도 감동적이다.

영화는 동명의 인기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옮긴 것이다.

따라서 ‘카바레’(1972년) ‘록키 호러 픽쳐 쇼’(1975년) ‘토미’(1975년) ‘벨벳 골드마인’(1998년), 특히 ‘물랑 루즈’(2001년) 등과 비교되는 것은 당연하다.

‘헤드윅’은 무엇보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인상적 선율과 영화의 내러티브를 이끄는 환상적인 노랫말로 관객들을 압도한다.

작품의 전체 분위기를 예시하는 도입부의 ‘테어 미 다운’을 필두로, 스티븐 트래스크가 플라톤의 ‘향연’까지 읽어가면서 작사·작곡했다는 메인 테마 곡 ‘사랑의 기원’, 밴드 이름 앵그리 인치에 얽힌 사연을 통렬하게 들려주는 ‘앵그리 인치’, 로커들에게 바치는 ‘미드나이트 라디오’ 등 음악은 단연 베스트 오브 베스트다. 가히 빔 벤더스의 ‘브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나 최근 개봉한 ‘판타스틱 소녀백서’를 능가할 정도.

‘헤드윅’은 아주 잘 만들어진 음악 영화에 머무르지 않는다.

숨이 가쁠 만큼 완벽한 미첼(관객들의 오해와는 달리 그는 트랜스섹슈얼이나 게이가 아니며 여장 남자 역을 한 것도 처음이란다)을 비롯한 출연진의 열연도 기본적 미덕일 뿐이다. 이 작품의 놀랍고도 결정적인 덕목은 시종일관 풍겨나는 영화의 진정성과 트랜스섹슈얼을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이다.

‘헤드윅’은 실제 뮤직 비디오류의 현란함이나 빠른 편집 따위에 그다지 크게 의존하진 않는다.

오히려 노래가 선보일 때마다 대개는 끝까지 연주를 하며, 실사(實寫) 장면이건 애니메이션이건 전적으로 부합되는 이미지를 결합시키면서 비교적 긴 호흡을 유지한다.

화려한 스펙터클보다는 감성의 연속성과 뉘앙스를 중시한다고 할까. 그러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역동적이다. 이것이 영화가 갖는 진정성의 이유다.

‘헤드윅’은 내가 영화에서 만난 가장 인간적이고, 매혹적이며, 복합적인 트랜스섹슈얼로 기억될 성 싶다.

영화가 성적 소수에 대한 내 시각을 한층 성숙시켰다고까지 느끼는 건 그래서다. 이만하면 영화에 열광한다 한들 하등 이상할 게 없지 않을까. 15세 이상 관람 가. 9일 개봉

전찬일 영화평론가·chanilj@hanaf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