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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 저편 90…밀양강 (6)

입력 | 2002-08-05 18:27:00


남자가 여자의 집을 찾았을 때, 태양은 삼나무 꼭대기에 있었다. 여자는 툇마루에 앉은 남자에게 춘설차를 내놓으며 슬쩍 물었다.

이름 뭐라 지었어예?

남자는 흠칫 놀란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차를 홀짝거렸다.

아직 안 지었다.

빗장을 지른 문 같은 남자의 얼굴을 보던 여자의 입에서 생각지도 않은 말이 쏟아져 나왔다.

얼른 이름 지어서 많이 많이 불러줘야제예, 얼라는 아직 이 세상에 있는 게 아니라예, 이 세상하고 저 세상 사이에 있는기라예, 저승사자는 얼라가 태어나기 전의 이름을 부르고, 얼라의 가족은 새 이름을 부르면서 서로 잡아당기는 기라예, 줄다리기라예.

남자는 여자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여자는 치마 속 허벅지에 힘을 빼고 기둥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눈 떠라.

여자는 다리 사이에 있는 남자의 머리를 보았다.

싫어예.

여자는 남자의 머리를 두 손으로 밀었지만 허리를 뒤로 뺄 수는 없었다. 머리카락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살며시 움켜잡고서 몸을 비틀었다.

아이구, 용서하시라예.

여자는 남자의 귀에 신음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손바닥으로 귀를 막았다. 삼나무가 한숨을 토하며 잔가지를 떨었다. 안방에 놓인 두 베개는 기다림에 지쳐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몸 아래서 떨어지는 빗물 소리를 들었다. 초가 지붕이 비를 빨아들이고 가득 채워쳐서야 떨어지는 것이니, 꽤 오래 전부터 온 모양이다. 툇마루에 있을 때에는 구름 한 점 없었는데. 지금이 몇 시지?

그렇게 오래 안고 있었나? 그런데 왜 똑같은 장소에서만 떨어지는 것일까. 늘 안방 뒤 처마 끝에서,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남자는 눈으로 흐른 땀을 손등으로 닦아내고 허리의 움직임에 속도를 더했다. 더 이상 물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여자는 땀으로 미끈거리는 남자의 몸에 매달려 외침 소리와 함께 등을 한껏 뒤로 제쳤다.

남자는 여자의 눈두덩에 입맞춤하고 옷을 입었다. 발소리가 멀어지고 사립문 닫히는 소리가 나는데도 여자는 꼼짝 않고 그 자리에 누어 있었다. 지금 물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지나가는 비였는지도 모르겠다. 물 내음이 난다. 비는 세차게 내릴 때보다 막 개었을 때가 물내음이 더하다. 남자의 땀이 그런 것처럼.

글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