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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임동혁 데뷔음반…건반위 흐르는 시냇물과 천둥소리

입력 | 2002-08-06 18:44:00

지난해 프랑스 롱 티보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임동혁은 데뷔음반에서 정교한 터치와 페달사용, 지적인 해석력을 통해 거장의 면모에 다가간 모습을 보여준다. 모스크바 집 연습실에서의 임동혁


눈을 감는다. 음반 표지의 앳된 표정은 잊어야 한다. 플레이어의 스위치를 누른다. 스피커 사이로 걸어나와 건반을 두드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바로 쇼팽이라고 상상해도 좋다.

지난해 12월 롱 티보 국제콩쿠르 우승의 주인공인 피아니스트 임동혁(18). 그의 EMI 데뷔음반이 녹음을 마치고 15개월만에 드디어 이달중에 선보인다. 발매를 앞둔 데뷔음반 ‘쇼팽 슈베르트 라벨 피아노작품집’을 입수해 느긋한 감상의 시간을 가졌다. 음반에 수록된 순서를 무시하고, 슈베르트의 즉흥곡 D.899로 건너뛴다. 폭염의 계절인 만큼, 물방울이 나뭇가지 끝으로 굴러떨어지는 듯 슈베르트의 청신한 서정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

‘아-’ 자리를 함께 한 애호가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잘 여문 옥수수알처럼, 미인의 환한 웃음 속에 돋보이는 가지런한 치열(齒列)처럼, 임동혁의 터치는 가지런했다. 방안에 시냇물이 흘렀다.

데뷔음반 표지

“도대체 페달을 어떻게 쓰는 걸까?” 페달을 끊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수채화처럼 깨끗하게 화음이 퍼져가지만 다른 색깔 위로 지저분하게 번져나가지 않는다.

네 곡의 즉흥곡 중 두 번째 곡. 오른손이 가장 높은 음역으로 달려갈 때는 좀더 볼륨감을 주었어도 되지 않았을까? 불평은 혼자만의 것으로 그친다. “깨끗한데 뭘….”

쇼팽의 발라드 1번. 달콤하면서도 음울한 쇼팽 특유의 서정이 마음껏 펼쳐지는 육중한 작품. 눈을 감은 앞, 공상의 무대에 눈썹 희끗한 노대가가 앉았다. 템포를 조여주었다 풀어주는 호흡의 완숙함. 잠시, 저역에서 중량감이 모자란다, 싶었다. 공상의 무대에 앉은 대가는 염려 말라는 듯 눈을 찡긋 한다. 눌러주듯이 한 박을 늘이고 넘어가자 약하게 친 그 터치의 의미가 살아난다.

연주는 마지막 무대, 라벨 ‘라 발스’로 달려나간다. 천둥치듯 우르릉거리는 왼손, 샴페인 마개를 딴 듯 분출하는 상쾌한 오른손. “쾌(快)!”

이번 음반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임동혁의 후원자’임을 당당히 밝히고 있는 ‘피아노의 마녀’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적극적인 추천에 의해 발매된 것.

“평론가들이 나에 대해 평하면, 아르헤리치선생님은 꼭 자기에 대한 평을 보는 것 같다고 웃습니다.” 임동혁 자신의 말대로, 그의 음반에 나타난 연주는 아르헤리치를 연상시키는 명쾌함과 영민함, 카페인을 탄 듯한 각성(覺醒)의 분위기를 강하게 드러낸다.

임동혁은 이 여름을 스위스 프랑스 등지의 유명 페스티벌에 출연하면서 바삐 보냈다. 그는 9월 7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이번 앨범에 포함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리사이틀을 갖는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