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9일 그린스타디움에서 열렸던 오릭스와 다이에의 시즌 15차전 경기. 오릭스 투수 야마구치(山口)가 배터박스의 마츠나카(松中)를 향해 던진 네 번째 공이 시속 158km로 날아갔다. 약 10년전 이라부(伊良部)가 기록했던 일본 프로야구 최고 구속과 타이. 기상천외할 만큼 숫자들 간의 상관관계를 이루어내는 일본의 언론과, 또 그것에 집착하다시피 하는 야구 팬들에게 이것보다 더 좋은 양념거리는 없었다. 앞으로 160km를 노리겠다는 야마구치(山口)의 발언은 계속해서 열도를 술렁이게 하고 있다.
‘꿈(夢)의 160km!’ 마츠자카(松坂), 테라하라(寺原)와 같은 신예는 물론, 前 야쿠르트 소속의 이시이 카즈히사(石井一)까지, 수많은 속구파 투수들과 관계 있는 문구다. 강속구를 가진 유망주들의 프로필과 기성 선수들의 인터뷰에서 이 꿈의 구속에 관한 내용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물론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일본 구계에서 160km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먼 옛날 미국팀을 혼쭐냈던 사와무라(澤村)부터 세계 최다 홈런의 오오(王) 등 미국에 맞서는 일본의 자존심들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부족한 무엇, 그것이 바로 160km 등반이기 때문이다. 야마구치(山口)가 158km를 던졌을 때와 SK 엄정욱이 156km를 던졌을 때의 반응의 차이는 비교도 할 수 없다. 물론 야구 열기 자체에도 차이가 있지만.
일본이 자랑하는 마츠자카(松坂). 코시엔에서 강속구를 뿌려대며 괴물투수로 호평 받았으며 화려하게 프로무대에 발을 내디뎠던 그 역시 160km를 뿌릴 강력한 후보로 평가된 바 있다. 물론 프로에 와서 구속의 상승이 있긴 했지만 2년전 156km를 기록한 것이 개인 최고다. 현재 그의 최고 스피드는 미세하나마 저하되고 있는 추세인데, 지난해 4월10일 이후 한번도 155km를 던진 적이 없으며, 올해는 4월6일 던진 153km가 최고 구속이다. 물론 그의 나이를 감안할 때 스피드 상승의 여지는 여전히 충분하다. 그러나 다이스케는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적인 투수의 모습에 가까워져 가고 있어 스피드가 전부가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그렇긴 하지만 그라운드를 찾은 수만 명의 관중과 채널을 고정시켜 놓고 일구 일구에 집중하고 있는 시청자들은 기왕이면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를 보고 싶어한다. 일반적인 팬들에게 있어 야구 경기 자체는 드라마이거나 쇼일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시원스런 강속구를 뿌리는 피처, 즉 명배우가 필요하다. 팬들이 홈런 타자에 열광하는 것과 같은 논리로 기교파 투수보다는 강속구 투수의 인기가 높다.
현역에 있는 양 리그의 최고 강속구 투수로는 퍼시픽리그의 야마구치(山口)와 센트럴리그의 이가라시(五十嵐)를 꼽을 수 있다. 두 투수는 금년 올스타 1차전에서 정면 대결을 펼친바 있다. 작년 154km를 기록했던 야쿠르트 소속의 이가라시 료타(五十嵐亮太, 금년에 입단한 이가라시 타카유키(五十嵐貴章)와는 동명이인이다)는 올해 156km까지 스피드를 끌어 올렸다. 특히 따뜻해지는 6월 이후 구속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데 한신 타이거즈를 상대로 했던 6월1일과 23일 치바 마린 스타디움과 코시엔 구장에서 156km를 기록했다. 요코하마 스타디움과 나고야돔에서도 155km를 기록했으며 또한 올스타 1차전의 토쿄돔에서도 155km를 기록했다. 그는 1979년 생으로 한신 이가와(井川) 등과 동갑내기. 156km 이상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야쿠르트에는 이가라시(五十嵐) 외에 또 한명의 강속구 투수인 이시이 히로토시(石井弘)가 있는데, 그는 7월28일 홈구장인 진구에서 154km를 기록했다.
160km도 가능하다는 요미우리의 외국인투수 헥토르 알몬테(Hector Almonte)는 지난해 토쿄돔에서 157km를 기록했으며 올해는 수차례 155km를 기록한 적이 있지만 아쉽게도 스피드가 잘 나온다는 나고야돔에서는 151km를 기록한 것이 전부다. 나고야돔처럼 스피드가 높게 측정되는 구장에 오사카돔이 빠질 수는 없다. 마츠자카(松坂, 156km), 쿠로다(黑田, 154km), 코바야시(小林, 153km), 오오츠카(大塚, 152km) 등의 개인 최고 스피드가 오사카돔에서 측정되었다. 일반적으로 습도가 높으면 공의 스피드가 줄어들기 마련인데 돔은 실내 구장으로서 외부 날씨에 큰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스피드 관리에 용이하다. 그러나 이것도 일장일단이 있다. 습도로 인해 투수가 공을 쥐는 감각이 훨씬 좋아지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변화구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강속구를 뿌리는 데는 선발투수보다 짧은 이닝을 책임지는 불펜 투수가 단연 유리하다. 마운드 플레이트를 밟고 난 이후 그들이 뿌려야 하는 공의 개수에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진필중, 노장진 등이 마무리로 전환한 이후 상당한 스피드 상승을 맛본 바 있다.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야마구치(山口), 이가라시(五十嵐), 알몬테(Almonte), 이시이(石井) 등은 모두 중간계투급 투수들이다. 클로저들 역시 특성상 전통적으로 강속구 투수가 많은데, 요코하마의 사이토(さいとう, 154km), 롯데의 코바야시(小林, 153km) 등이 대표적이다. 주니치 개러드(Gaillard)의 최고구속 155km는 홈구장인 나고야돔에서 측정되었다는데 있어 약간 의문을 품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고야돔을 제외한 타구장에서의 최고구속은 대부분 150km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스피드는 일본 입성 초기보다 상당히 줄어있다. 요미우리 역시 공이 빠른 카와하라(河原)를 마무리로 낙점하여 재미를 보고 있다.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다. 로켓 보이를 둘이나 보유한 야쿠르트의 마무리는 타카츠(高津)다.
외국인 투수로는 알몬테(Almonte)와 개러드(Gaillard)가 수준급의 스피드를 자랑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999년 킨테츠 소속이었던 도미니카 출신의 페르난도 데 라 크루즈(Fernando De La Cruz) 역시 155km급의 직구를 선보인 바 있었다. (비공인 최고 159km) 또한 대만 출신으로 세이부에서 활약했던 카쿠(郭泰源, 곽태원)는 1980년대 중반 최고 156km의 공을 뿌렸다. 여기에 선동열이 빠질 수 없다. 일본에 건너갔을 당시 이미 한참 노장에 속했지만 그럼에도 최고 154km를 기록했다. (측정에 다소 차이가 있어 155km로 보도되기도 함)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기도 했던 벤 리베라(Ben Rivera)도 한신 유니폼을 입고 활약할 당시에 153km를 기록했고, 롯데의 시코스키(Sikorski) 역시 올해 153km를 기록했다. 이 밖에도 정민태는 149km, 구대성은 147km, 이상훈과 정민철은 146km를 일본에서 기록했다. 본인들이 한국에서 기록했던 최고 스피드보다는 약간 저하된 스피드로서 측정상의 문제인지 아니면 실제로 구속이 저하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과거에도 일본에는 상당수의 강속구 투수가 존재했다. 프로야구 태동기의 사와무라(澤村)는 159km까지 던졌다고 하는데 물론 이것은 당시 자료의 화면 분석을 통해 얻은 결과로서 정확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미국 대표팀을 상대로 했던 투구내용과 경기 후 미국팀 타자들의 발언을 감안한다면 그래도 수준급의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였음을 알 수 있다. 400승 투수 카네다(金田). 장신의 좌완으로서 빠른 직구과 낙차 큰 커브가 주무기였는데 본인은 끝까지 165km를 던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교적 최근으로 본다면 주니치의 요다(よだ)와 오릭스의 히라이(平井)가 공인 157km의 공을 던졌으며 요미우리 출신의 이시게(石毛), 마키하라(まきはら)도 각각 156km, 155km의 공을 던졌다. 150km대 초반을 던지는 투수는 예전에도 많았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올해 고교생 투수로는 토호쿠(東北)의 타카이(高井)와 닛쇼학원(日章學園)의 카타야마(片山)를 지켜볼 만 하다. 미야기(宮城)현 대회에 출장했던 타카이(高井)는 고교생 좌완으로서는 경이적인 151km의 강속구를 자랑했지만 아쉽게도 팀이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는 강속구 뿐 아니라 타이밍을 뺏는 변화구에도 능해 초고교급 투수로 평가되고 있다. 미야자키(宮崎)현 대회에 등장했던 우완 투수인 카타야마(片山) 역시 최고구속이 150km에 달하는 강속구를 자랑한다. 그의 소속팀인 닛쇼학원(日章學園)은 코시엔에 올랐다. 그는 브라질 출신이다. 야쿠르트에 있는 브라질 출신 트리오를 연상하면 된다. 대학 4학년 투수로는 큐슈공립(九州共立)의 아라카키(新垣), 아시아의 키사누키(木佐貫), 토카이(東海)의 쿠보(久保), 류코쿠(龍谷)의 스기야마(杉山) 등이 눈에 띈다. 아라카키(新垣)는 1998년 코시엔에서 마츠자카(松坂)와 스피드 대결을 했던 투수로서 최고 154km의 직구를 뿌린다. 키사누키(木佐貫)와 쿠보(久保)의 스피드 역시 150km를 상회한다. 같은 조건이라면 강속구를 가진 투수를 뽑는 것이 일반적인 생리다.
하지만 현재 대학 최고 투수는 와세다 소속의 와다 츠요시(和田毅)다. 통산 22승11패, 방어율 1.48을 기록하고 있으며, 호세이 시절의 에가와(江川)가 기록했던 443탈삼진 경신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6월말 미일 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도 일본팀이 유일하게 승리한 2차전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6이닝 동안 3실점 9탈삼진으로 호투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직구 최고 구속은 140km 정도에 불과하다. 그는 대표적인 ‘기교파’ 투수다.
강속구는 타자와의 대결에 있어 훌륭한 무기지만 그것은 한시적이다. 특히 불펜에서 대기하는 투수가 아닌, 경기의 시작과 함께 등판하는 선발 투수라면 더욱 그렇다. 프로에서 뛰고 있는 타자들의 시각적 적응력은 투수가 던질 수 있는 어떠한 강속구도 굴복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투수가 상대해야 하는 것은 스피드건이 아닌 배터박스의 타자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km/h로 평가되는 절대적인 수치는 사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타자와의 승부에서 최대의 과제는 상대의 눈을 속이는 것이다. 따라서 강속구의 진가는 변화구 또는 체인지업과 결합될 때 드러난다. 그것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은 이미 전제에 깔려있다. 스피드만이 능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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