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가 2002월드컵축구대회가 끝난지 한달여만인 6일 박항서 23세이하 대표팀 감독 체제로 아시아경기대회 및 올림픽을 맞기로 결정했다. 국가대표팀 감독은 한국을 월드컵 4강으로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의 잔영이 너무 큰 탓인지 선뜻 윤곽을 내놓지 못했다.
이에 반해 한국의 영원한 라이벌 일본의 행보는 발빠르다. 월드컵 출전 두번만에 16강 진출의 쾌거를 일궈냈지만 한국의 선전에 빛이 가린 만큼 원점에서 다시 축구화끈을 조여매고 있다.
일본대표팀의 가장 큰 변화는 감독 교체. 일본축구협회는 지난달 20일 필리프 트루시에 감독 후임으로 지코 감독(사진)을 새 사령탑으로 영입했다. 코치진에는 지코 감독의 친형으로 94∼95년 일본프로축구 가시마 앤틀러스 감독을 맡았던 에두와 함께 올림픽팀 야마모토 감독을 선임했다.
프랑스식 조직축구를 모토로 삼던 일본이 개인기 위주의 브라질축구 영웅에게 대표팀 지휘봉을 맡긴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2002월드컵을 앞두고 ‘개성파’ 트루시에 감독과 숱한 마찰을 겪었던 만큼 일본축구를 잘 알뿐더러 세계축구 흐름에 정통한 감독이 인선의 첫째 조건이었다.
지코 감독은 91년부터 가시마에서 현역으로 뛰었다. J리그가 출범한 93년부터는 실질적인 감독 역할을 하면서 그라운드를 누볐고 이듬해 은퇴하기까지 가시마 축구의 기초를 다졌다. 이후 96년에는 가시마 기술자문으로 활약해 누구보다 일본축구에 정통하다. 98프랑스월드컵때는 브라질대표팀 기술 코디네이터로 활약, 세계축구에도 정통하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는 일본축구협회의 결정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프랑스식 조직축구에 길들여진 일본축구가 과연 화려한 개인기 위주의 브라질축구를 따라갈 수 있겠느냐는 우려였다.
과연 일본축구대표팀은 어떤 방향으로 갈까. 단서는 지코 감독이 가시마를 이끌던 시절이다. 지코 감독은 당시 자신의 체력적 한계를 커버하기 위해 미드필드진을 대폭 조정하는 한편 수비 라인은 미리 정해진 ‘약속’에 따라 움직이도록 주문했다. 상황에 따른 대처법을 미리 정해두고 이에 따라 경기를 풀어나가는 것. 가시마가 지금도 화려하지는 않지만 빈 틈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지코 감독이 세운 전통 때문이다.
지코 감독의 이같은 방식은 브라질식과는 거리가 멀다. 조직력을 중시하고 그 속에서 선수 개개인의 장점을 살린다는 점에선 유럽 스타일에 가깝다.
일본축구 전문가들은 ‘지코 축구’는 없다고 평가한다. ‘플랫 3’를 내건 트루시에 감독과 달리 전술 운용에 특징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지코 감독은 기본을 중시한다. 그는 취임 기자회견에서도 “브라질대표팀에게 당연한 것을 일본대표팀도 당연히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기본을 강조했다.
그가 밝힌 대표팀 운영 계획은 언뜻 거스 히딩크 전 한국대표팀 감독을 연상시킨다. 그는 “명성보다는 그때 그때 선수들의 활약이 대표팀 선발 첫째 기준”이라며 선수들의 무한 경쟁을 유도하는 한편 “명확한 목표가 있을때만 합숙 훈련을 하겠다”며 선수들의 도전욕을 중시했다.
브라질에 일시 귀국했다 10일 일본에 돌아가는 지코 감독의 데뷔 무대는 빠르면 이달중 열릴 전망이다. 그의 요구에 따라 일본축구협회가 11월20일 아르헨티나대표팀과의 친선 경기에 앞서 8,9월중 대표팀 평가전을 마련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