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문화가 흐르는 한자]春 秋 筆 法(춘추필법)

입력 | 2002-08-08 17:24:00


春 秋 筆 法(춘추필법)

筆-붓 필 邪-사악할 사 剋-이길 극

悖-어길 패 忘-잊을 망 撥-다스릴 발

‘春秋戰國’이라는 말은 春秋(BC 722-BC 481) 242년과 戰國(BC 480-BC 222) 259년을 합친 약 500년간의 극심한 混亂期(혼란기)에서 나왔다. 混亂의 원인은 諸侯(제후)들이 天子의 말은 듣지 않고 覇業(패업)에만 눈이 어두워 살육전쟁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한편 春秋와 戰國은 孔子(공자·BC 551-BC 479)가 지은 魯(노)의 역사서 春秋와 漢(한)의 劉向(유향·BC 77-BC 6)이 지은 戰國策(전국책)에서 유래한다.

두 책에서 다루었던 시대가 바로 이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孔子는 春秋時代 말기에 태어난 셈이다. 周(주)나라가 서고 560년이 지난 뒤라 周王室(주왕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그 옛날 周公(주공)이 애써 제정했던 신분제도가 무너져 가던 때였다.

자연히 混亂이 극에 달해 온갖 邪術(사술)이 판을 쳤고 ‘下剋上’(하극상)이 橫行(횡행)했으며 신하가 임금을,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悖倫(패륜)이 亂舞(난무)했다.

孔子는 이 같은 현상을 누구보다도 우려했던 사람이다. 그가 混亂의 원인을 ‘亂名’(난명·職分을 忘却해 어지럽힘) 때문이라고 보고 ‘분수를 지키자!’고 외치면서 正名論(정명론)을 주장했다 함은 이미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그는 주장에만 그치지 않고 이 같은 亂名失分(난명실분)과 亂臣賊子(난신적자)들을 비판하고 나아가 후대에 엄정한 교훈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국 魯나라의 기존 역사를 바탕으로 새 역사서를 저술하고는 이름을 ‘春秋’라고 했다. 魯 隱公(은공)부터 哀公(애공)에 이르는 12代 242년을 담은 1만 6000여자의 編年體(편년체) 역사서다.

중요한 것은 그의 저술태도다. 그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엄정한 史觀(사관)과 냉철한 태도, 객관적 자료에 근거해 자신의 정치적 이상인 正名(흐트러진 직분을 바르게 함)을 실천코자 했다.

그래서 是非(시비), 善惡(선악), 曲直(곡직)을 가려 褒貶(포폄·잘 한 것은 칭찬하고 못한 것은 비판함)을 가함으로써 撥亂反正(발란반정·혼란을 바로 잡아 정도로 나아감)을 꾀했던 것이다.

후세 학자들은 그의 이 같은 역사기술태도를 두고 春秋筆法이라 했다. 사실에 근거해 시비를 엄정하게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春秋正論이라고도 한다. 이미 언급한 董狐直筆(동호직필·2001년 4월18일자)과 같은 뜻이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