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부터 한국투신증권 금융공학팀에서 일해 온 신계철 선임연구원(39)은 스스로를 ‘금융가의 엔지니어’라고 소개한다. 증권회사에 다닌다고 하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무슨 주식을 사면 돈을 벌 수 있느냐”고 묻거나 “장이 내려 걱정이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신 연구원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재무학은 물론이고 통계학 수학, 때로는 물리학과 씨름하며 새로운 금융상품과 전산시스템 등을 만들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는 사람들은 그를 ‘금융공학(Financial Engineering)’ 전문가라고 부른다. 국내 증권사들이 자격만 갖추면 장외파생상품(OTC)을 취급할 수 있게 되면서 한국 증권가에도 금융공학이 전성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증권가에 부는 금융공학 바람〓증권사들은 장외파생상품 업무가 장차 투자은행(IB)으로 변신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보고 있다.
현대증권은 지난해 10월 리서치센터 안에 금융공학팀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95년 생긴 LG투자증권 금융공학팀도 장외파생상품 전략 및 모델 개발에 주력하기 위해 파생상품공학팀으로 이름을 바꾸고 리서치센터에서 독립했다. 대우증권 유중래 투자공학부장은 “한국의 금융공학은 96년 선물거래가 도입되면서 싹이 트고 97년 외환위기를 통해 성장했다”며 “증권사의 장외파생상품 취급은 금융공학이 진일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이 금융공학인가〓확립된 개념은 아직 없다. 다만, 시장의 변화와 고객의 요구를 충족하는 금융상품을 ‘만들고’ 이미 있던 상품을 ‘혁신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상품의 대부분은 파생상품. 이를 만들고 분석하는 과정에 물리학 화학 수학 생물학 산업공학 등 자연과학 이론이 사용되기 때문에 공학이라는 명칭이 어울린다. 예를 들어 옵션의 적정가격(이론가격)을 계산하는 ‘블랙 앤드 숄즈’ 모델은 물리학의 편미분방정식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기체의 움직임을 연구한 브라운법칙에서 열역학법칙, 인체 신경계를 이용한 모델까지 응용하고 있다.
금융공학자들의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는 주식과 채권, 장내 및 장외파생상품 등의 가격을 정하는 것.
임정재 대신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몇 가지 가정을 세우고 기체 분자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브라운법칙을 도입해 몇 가지 가정 아래에 미래의 금융상품의 값이 얼마나 될지 측정한다”고 말했다.
고객의 요구를 충족하는 투자전략과 모델을 짜는 일도 중요하다.
또 예상되는 위험을 파악해 관리하고 전산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금융가의 ‘엔지니어’들〓신 연구원이 처음 이 일을 시작한 90년에는 금융공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전문가도 없었다.
지금은 후배들이 많이 늘었고 업무의 성격상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전문가들이 일한다. 국내 5대 증권사의 금융공학팀(명칭은 회사마다 다름) 팀원 32명을 분석한 결과 경영 경제 등 상경계열이 18명(56.25%)이고 수학 산업공학 등 자연과학 분야가 10명(31.25%)이었다. 특히 석사학위 소지자 22명 중에는 금융공학 수학 통계학 전공자가 10명(45.45%)이나 됐다. 금융공학 석사학위 소지자는 모두 한국과학기술원의 테크노금융대학원 출신이다.
이 학교 1기 졸업생인 임 연구원은 “미래의 가격을 계산하고 확률을 구하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에 강한 사람이 필요한 분야”라고 말했다.
▽인간의 한계 뛰어넘기〓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신만이 아는 미래에 대한 도전이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인간의 한계는 엄연하다.
미국의 전설적 헤지펀드인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는 90년대 철저한 과학적 투자기법을 사용해 세계 최대의 펀드로 성장했다. 그러나 98년 8월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세계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지면서 한순간에 몰락했다.
경제칼럼니스트 로저 로웬스타인은 롱텀의 실패에 대해 “공포에 휩싸여 투매에 나서는 공황심리와 탐욕 등 인간적인 요소를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을 쓴 피터 린치의 말은 더욱 신랄하다.
“역사나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통계학 따위를 공부하는 것보다 주식시장을 더 잘 준비하는 방법이다. 주식투자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주식투자 방법을 수량화할 수 있다면 대형 컴퓨터를 빌려 돈을 벌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주식시장에서 필요한 수학의 수준은 초등학교 4학년쯤에서 이미 배운 것이다.”
금융공학자들도 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임태일 한국투신증권 팀장은 “금융공학은 비행기의 항법장치처럼 수많은 변수를 정리해 조종사(투자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며 “이를 토대로 안전하고 빠르게 비행기를 모는 것은 조종사의 몫”이라고 말했다.
주식 채권 외환 금리 등의 미래 가격변동을 예상해 ‘금융상품의 가격 움직임’을 상품화한 것. 주식은 금융자산이고, 이 주식을 미래의 특정가격에 사고팔 권리인 옵션은 파생금융상품이다. 선물 옵션 선물환 스와프 등 다양한 종류가 있고 이들을 조합한 2차 파생금융상품도 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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