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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논설위원칼럼]김우상/대북 ´경제카드´ 왜 못쓰나

입력 | 2002-08-08 18:31:00


월드컵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우리 해군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교전이 일어난 지 이제 겨우 한 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의외로 4일 금강산에서 남북 장관급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대표 회의가 열렸다. 이어 6일에는 판문점에서 유엔군사령부와 북한군간의 장성급회담이 개최되었다. 이를 두고 남북간의 본격적인 화해무드가 다시 시작되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북한당국은 서해교전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을 뿐 한국정부가 요구한 사과는 하지 않고 공동책임 운운하고 있다. 심지어 장성급회담에서 북한군 수석대표는 서해교전시 침몰한 우리측 함정을 인양하는 작업을 서해상에서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로 간주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장성급회담에서 서해상의 군사충돌 방지를 위한 의견교환도 있었다고 하지만 북한군 대표는 기존 북방한계선(NLL)을 무시한 채 명확한 해상경계선에 대한 북-미간 협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무접촉 제의에 들뜬 정부▼

돌이켜보면 북한은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 공동선언, 올 4월의 4·5 공동보도문 가운데 어느 하나도 성실히 이행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김대중 정부는 북한이 쌀 30만t을 요구하면서 장관급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을 해준 것에 대해 너무 들떠 있는 것 같다.

북한이 서해도발 사태에 대해 명확한 해명을 하지 않고 있는데도 김대중 정부가 남북교류 재개를 서둘러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별로 없다. 서해교전 당시 전사자들의 유족뿐만 아니라 국민 대다수는 월드컵 축제무드를 여지없이 깨뜨린 북한의 6·29 서해도발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남북교류 재개를 빌미로 한 신(新)북풍이 앞으로 있을 대선에서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다. 신북풍은 정치판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어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부추길 수 있다.

이에 반해 북한은 얻을 것이 많다. 북한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나마 남북교류 재개를 통해 30만t 이상의 쌀을 남한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남한에 어떠한 차기 정부가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김대중 정부만큼 ‘관대’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다급한 심정일 것이다. 또한 미국의 대북 강경책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면 북한은 북-미대화 재개를 통해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해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 남북간 및 북-미간 접촉을 수용하고 부산아시아경기대회, 9월 남북축구대회에 참가하는 진정한 이유가 한반도 신뢰구축과 평화정착에 있다면 김대중 정부의 남북관계 급진전 노력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북한의 저의가 눈에 보이는데도 정부 당국자들이 이를 외면하려는 데 있다.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 북한 선수단이 대거 참가하고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에서 채화된 성화가 하나가 되어 통일의 염원을 담는 역사적인 장면이 조만간 연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월드컵경기장은 남북축구장으로 변해 다시 한번 뜨거운 열기를 뿜어낼 것이다.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가슴 뭉클한 장면도 곧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이와 같은 남북간 화해무드가 북한의 재도발로 인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햇볕정책은 역사적인 6·15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간 화해무드를 조성하는 데 성공적이었다. 또한 ‘경제지원 불가’라는 대북 협상카드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다시 말해 김대중 정부 집권기간에 북한은 대남 화해 협력무드를 제공하는 대가로 남한의 경제지원을 받는 데 익숙해졌다. 이제 북한이 협조적이지 않을 경우 우리 정부는 ‘대북 경제지원 불가’라는 효과적인 협상용 카드를 사용될 수 있게 되었다.

▼일회성 화해무드만으론 안돼▼

김대중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더 이상 서두르지 말고 햇볕정책을 마무리해야 한다. 바로 ‘대북 경제지원 불가’나 ‘회담 불응’이라는 협상카드를 사용해야 할 시점이다. 남북 장관급회담이 재차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북측의 태도 여하에 따라 우리측 대표가 먼저 회담장을 박차고 나올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북한 당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비협조적일 경우에는 김대중 정부로부터 어떠한 대북 지원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음을 실감할 때 햇볕정책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서해도발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책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우리 정부의 단호한 대응으로 인해 당분간 남북간 화해무드를 만끽할 수 없어도 어쩔 수 없다. 북한이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 불참하고, 남북축구대회가 무산되고, 이산가족상봉이 연기되는 사태가 발생한다고 해서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난할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대다수 국민은 일회성 잔치에 지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김우상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