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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기 세상읽기]아무 것도 믿지 말라고?

입력 | 2002-08-09 17:30:00


소설가 장 정일이 장편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김영사·1996·절판)를 쓸 무렵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세상 말은 왜 거의 다 거짓말인 줄 아세요? 듣는 이에게 더 위안이 되기 때문이지요.” 이 책은 소설 속 주인공의 처가 남편에게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다 말해보라’ 하는 끝 부분의 대사가 그대로 책 이름이 되었다.

다시말해, 거짓말이 세상을 지배하는 합법적 마약이라는 것인데, 내 생각은 요즈음 이렇게 비약되었다. ‘이제 무얼 믿고 살지?’

우리 정치 책임자들은 하늘처럼 믿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주의 두 가지다. 이 믿음은 유럽도 같은 듯, 프랑스 비평가 기 소르망(Guy Sorman)씨가 최근 우리나라 신문에 실은 칼럼 ‘유럽 좌파의 절망’에 따르면 오랜 유럽 국가주의(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80년대에 벌써 미국식 자유주의에 패배했다.

오랜 국가주의 국가 일본은 어떤가.

지금은 군소 자유당의 당수가 되었지만 10년 전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라는 중의원이 우리 노풍(盧風)같은 태풍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의 책 ‘일본개조 계획’(1993·고오단샤)이 그 태풍의 요약이다.

뉴스위크에 소개된 그의 계획착안의 계기는 이렇다. 미국 그랜드 캐년에 가서 보니, 일본 같았으면 여기저기 철책을 두르고 주의 경고판도 세웠을 터인데 그런 것 하나 없더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일본이라는 국가는 너무 오래 국민(그리고 기업)을 아이들처럼 과보호했다는 것이다. 국가 경쟁력 침체도 이 때문이니 늦었지만 자기책임을 요구해야 할 때가 왔다고 느꼈다는 것이다(이상하게도 그는 먼저 비슷한 발상으로 영국 개조에 성공한 대처 수상에게서 배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자유주의 요구는 50만부 넘게 팔린 나까다니(中谷)교수의 책 ‘통쾌! 경제학’(슈에이샤·1997)에서 재현되었다. 국가주의의 ‘결과의 평등’ 추구를 포기할 것을 21세기 제1의 선택으로 요구한 것. 고이즈미 개혁은 이 아이디어 선상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 정부는 집권 초 1998년에 벌써 자유주의 선택을 선언했다. 이것이 우리를 ‘확실-하-니- 구하리라!’ 했다. 그런데 이 부푼 선언과 공약이 위안 하나 못 준 거짓말이었다, 면?

시장이야 언제나 거짓말의 장터였다해도 거짓말이 아니다. 선전, 선동에 거짓말을 해서도 못 팔면 죽어라! 하는 곳이다. 그래서 너도나도 다 세계최고!라고? 최근의 맹독성 중국산 살빼기 약은 어떤가. 결사반대! 라면서 파는 노총은? 천하의 공자님이 자기를 팔러 전국을 거듭 떠돌 때 왜 이 초보의 초보를 모르셨을까.

그런데 우리 국가, 정부는? 벌써 아셨던 것이 틀림없다. 자유주의 선언에 이어 제 2 건국추진위원회를 만들고 “기본을 바로 세워 일류국가를 이룩하자”고 했다.

“준비가 다 되어있다”고 했고 “거짓말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얼마나 매혹적인가. 그러면 그렇지, 50년만에 나라다운 나라가 되나보다, 고 박수치고 4년반을 기다렸다. 그런데,…. 어떠신가. 당신은 장정일식 위안을 받지 않았느냐, 고?

이제 정부도 장사꾼 같이 무책임이라는 거짓말 장터에 나 앉아 있다. 시장이야 골라 사면 된다지만 정부는 찍었으면 임기 동안은 그러지 못하는 것. 대통령이 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면 하는 것이고 나는 몰랐다, 면서 무책임하다. 그리고 무책임하게도 펑펑, 채무탕감! 이다, 주5일 근무!다, 사면!이다. 술 취한 아버지의 오기와 선심의 국가주의가 이 정부 말로는 자유주의이다. 정부 똑바로 감시하라는 국회는? 그러니 이제 무엇을 믿고 살지? 하는 비약에 이르는 것이다. 김일성이 북한 인민들에게 “기와집에서 살고 고깃국에 이밥 먹게 해주겠다!”한 거짓말보다는 낫다, 고?

미국 베스트셀러 ‘Codependent No More’ (Melody Beattie,1987)는 남녀 부부 가족관계에서 상호의존을 그만 두라는 메시지로 유명했다. 이 메시지를 바꾸면 ‘국민이여, 국가에 기대지 말라!’가 된다. ‘Don’t trust anything!’(아무 것도 믿지 말라)는 미국 말이 실은 자기자신도 믿지 말라, 던데…. 잔혹한가. 그러면 거짓말이 아니다.

박의상 시인 parkuisang@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