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기행’(새로운 사람들)의 저자 심인보씨(46)는 기업 이미지를 만드는 ‘디자이너’다. 그러나 요즘은 8개월째 ‘백수’로 지내고 있다. 직장과 가정의 무게에 짓눌려 있을법한 나이에 과감하게 카메라와 배낭만 들고 여행을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20년간 정신없이 일에 매달렸습니다. 한번쯤 정리할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혼자 떠나는 여행은 나를 다시 보는 기회를 제공하거든요.”
앙코르와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해 11월말. 그는 우연히 마주친 캄보디아 유적에 놀라고 경이감을 느꼈다.
우리에겐 가난한 나라로만 알려진 캄보디아에 풍요로운 문화유산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심씨는 한달 뒤 다시 앙코르와트의 만남을 위해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길거리나 허름한 상점에서 서민들의 냄새를 가까이서 맡고 싶어 값싼 숙소를 찾아다녔다. 3주동안 여행경비는 200만원으로 해결했다.
“앙코르와트 문명이 남긴 찬란한 유적지를 바라보며 캄보디아를 세계 최빈국으로 내려다 봤던 내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았습니다. ”
그가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것은 거리에서 만난 천진한 어린이들이었다. 사진을 찍으려하자 “콜라 한 캔만 사주면 마음대로 찍어도 된다”는 아이들에게서 애틋함을 느꼈다. 캄보디아에서 50센트(약 600원)짜리 콜라 한 캔은 밥 한끼 식사 값에 해당한다. 그들에게 콜라는 ‘귀한 간식’이었던 셈이다.
“사진을 찍으려다 아이들이 몰려들면서 콜라 여덟 캔을 사 준 적도 있어요. 한국전쟁 직후 미군을 향해 ‘사탕을 달라’고 외쳤던 우리의 옛 모습을 보는 듯 했죠. 하지만 빈번한 내전으로 황폐하고 가난한 삶을 살면서도 맑고 순수한 그들의 모습이 부럽게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심씨는 앙코르와트 기행을 하면서 부족함도 많이 느꼈다. 캄보디아에 대한 국내 자료가 부족한데다 영어 불어 등 외국어 실력이 짧아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캄보디아에 다녀온 뒤에도 그의 여행은 계속됐다.
노르웨이의 자연을 즐겼고, 유럽의 변방 터키도 다녀왔다. 특히 터키에서 느꼈던 감회는 남달랐다. 그는 처음 만난 이스탄불의 택시기사로부터 융숭한 환영을 받았다. ‘한국인’이라는 얘기를 듣자 택시기사의 즉석 초대를 받아 차와 과일을 대접받은 것.
그는 이 책에 이어 기행 시리즈물을 만들어보자는 출판사의 제안을 받은 상태. 하지만 신중하게 결정할 생각이다. 주변에서 “멋진 인생을 산다”는 찬사와 “짧게 머문 외국 여행을 책으로 묶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심씨는 “사진 촬영과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앙코르와트의 이모저모를 보고 느낀 소감문 정도로 생각해 달라”고 당부했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